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일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중앙지법 청사를 나서고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구속 필요사유에 대한 소명 부족을 이유로 기각됐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관심 등에 비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소명의 시간 부여 취지로 부의를 결정했다.”
11일 오후 약 3시간 40분 동안 서울중앙지검 13층 소회의실에서 열린 서울중앙지검 시민위원회의 부의심의위원회가 끝난 직후 부의심의위는 이 같은 입장문을 냈다.
이 부회장과 옛 미래전략실의 김종중 전 사장, 삼성물산 등이 2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의혹에 대한 기소 여부를 검찰 수사팀이 아닌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에서 심사해 달라고 요구한 지 9일 만이다. 이 부회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팀의 구속영장이 9일 기각된 채로 수사심의위가 이달 중 열리게 되면서 이 부회장은 불기소 판단까지 기대해볼 여지가 생겼다.
○ “근소한 차이 과반 찬성으로 수사심의위 소집”
부의심의위원은 서울중앙지검의 검찰시민위원 가운데 무작위로 추첨된 15명으로 구성됐다. 교사, 회사원, 의사, 대학원생, 자영업자, 퇴직 공무원 등으로 구성된 부의심의위원은 20대부터 70대까지 연령대가 고르게 분포됐다.
운영지침상 부의심의위는 이 부회장 등 신청인과 검찰 수사팀이 각각 제출한 A4용지 총 120쪽(각 30쪽)의 의견서를 서면으로 심사한 뒤 수사심의위 개최 여부에 대한 투표를 했다. 부의심의위원 전원인 15명이 참석한 가운데 과반(8명)을 근소한 차이로 넘는 부의심의위원이 수사심의위 소집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부 법률 전문가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와 달리 부의심의위의 경우 사안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성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때문에 혐의 자체를 하나하나 뜯어 판단하기보다는 법원의 영장 기각 사유 등 다른 요인에 근거해 결정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부회장 측은 수사심의위 소집 결정 직후 “국민들의 뜻을 수사 절차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부의심의위의 결정에 감사드린다”면서 “앞으로 열린 수사심의위 변론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의심의위는 “검찰이 장기간 수사한 사안으로 기소가 예상되므로 부의 필요성이 없다는 의견도 제시 및 논의됐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팀은 “검찰 수사가 적정하고도 공정하게 진행되어 왔으므로,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검찰 수사팀이 수사하여 (기소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과반의 동의를 얻지 못했다.
○ 늦어도 이달 중 수사심의위 열릴 듯
부의심의위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대검찰청의 수사심의위 소집요청서를 12일 송부할 예정이다. 수사심의위는 이르면 일주일, 늦어도 이달 안에 기소 여부를 결정한다. 2018년 울산지방경찰청의 한 경찰관이 자신의 피의사실 공표 혐의와 관련된 수사심의위 소집을 신청했을 땐 20일 만에 수사심의위의 결론이 나왔다.
운영지침상 ‘사법제도 등에 학식과 경험을 가진’ 학계 인사와 변호사, 시민단체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150명의 수사심의위원단 중에 15명을 무작위로 추첨해 수사심의위를 구성한다. 검찰은 수사심의위원들의 일정을 조율하는 한편으로 수사심의위원들이 이 부회장 측이나 삼성 등과 관련성이 있는지를 점검한 뒤 수사심의위원장에게 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위원장은 양창수 전 대법관이 맡지만 투표권은 없다.
수사심의위 단계에선 본격적으로 검찰이 제출하는 피의자의 혐의 등에 대한 논의도 하게 된다. 서면 심사만 허용되는 부의심의위와 달리 수사심의위에선 수사팀과 이 부회장 측이 직접 참석해 30분가량의 의견 진술을 할 수 있다. 제출하는 의견서 분량은 부의심의위 때와 같지만 수사심의위의 허락에 따라 추가 자료를 낼 수 있다. 수사심의위는 이 부회장 측이 요청한 수사계속 여부와 기소 여부 등을 과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수사심의위의 결론을 수사팀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중’하도록 돼 있다. 검찰은 앞서 열린 8차례의 수사심의위 결과를 모두 받아들였다. 하지만 수사심의위에서 검찰의 기대와 달리 불기소 처분으로 결론이 나올 경우 수사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사팀은 기각되긴 했지만 이 부회장에게 구속영장까지 청구한 만큼 내부적으로 불구속 기소를 마지노선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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