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 방화 일가족 3명 사망사건…계부의 계획범행에 무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2일 15시 21분


-아내와 의붓아들 몸에선 화상과 흉기 상처
-1999년 여자친구 살해 혐의로 17년 복역

원주 일가족 3명이 숨진 아파트 화재 현장.
원주 일가족 3명이 숨진 아파트 화재 현장.
숱한 의문이 남은 강원 원주시 문막읍 아파트 일가족 3명 사망 사건은 계부에 의한 계획범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전 남편인 A 씨(42)가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휘발유를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욱이 A 씨는 살인 전과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999년 군복무 도중 탈영해 당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17년을 복역했다.

A 씨는 무슨 이유로 아들과 전 부인에게 흉기를 들이대고 아파트에 불까지 질렀을까.

● 결혼 6개월 만에 비극적 결말
사건 발생 뒤 많은 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다뤘다. 그러나 가족을 상대로 한 범행의 잔혹성과 범행 동기, 고의성 여부 등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A 씨와 부인 B 씨(37)는 올해 초 결혼했고, 1일자로 이혼한 상태였다. 이주여성으로 한국 국적을 얻은 B 씨는 A 씨와 재혼했고 숨진 아들 C 군(14)은 B 씨의 친아들이었다. 친부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의 성(姓)은 같았다.

주변 증거 등을 통해 사건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폐쇄회로(CC)TV 분석 결과, 사건 당일인 7일 오전 1시경 A 씨가 아파트를 찾아왔다. A 씨는 밖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다. 오전 5시 반경 B 씨가 집에 돌아왔고, 약 10분 뒤 A 씨가 밖으로 나와 차에서 휘발유통으로 추정되는 물건을 들고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다. 6시 5분경 펑하는 소리와 함께 아파트에 불이 났고 주민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그동안 A 씨는 B 씨가 귀가하기 전 휘발유통을 들고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B 씨가 도착한 뒤 A 씨는 미리 준비했던 휘발유통을 차에서 꺼내 간 것”이라고 바로잡아줬다.

● 미리 준비한 흉기와 휘발유
당초 사건은 부부가 싸움을 벌이다가 남편이 싸움을 말리는 아들을 우발적으로 찌르고, 아내까지 찔렀을 것이란 추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경찰 조사 결과 A 씨가 범행에 사용할 흉기와 휘발유를 미리 준비했고, 소방관들이 출동했을 때 방에서 발견된 아들 C 군은 이미 숨진 상태였다. 이를 감안하면 우발적이란 추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부자가 단 둘이 함께 있던 4시간 반 동안 계부 A 씨의 범행은 이미 시작됐을 가능성이 크다. 나중에 귀가한 B 씨를 상대로 추가 범행이 이뤄졌고, 현장을 은폐하기 위해 휘발유를 가져와 불을 지른 것으로 보인다.

A 씨가 자신의 극단적인 선택마저 미리 염두에 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범행 뒤 불을 지르고 도주하려고 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유증기의 폭발로 미처 도망가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프링클러가 작동해 불은 크게 번지지 않았고 출동한 소방관들에 의해 곧 진화됐다. 아파트 112㎡ 가운데 33㎡만 불에 탔다. 부부는 소방관들이 도착한 직후 베란다에서 떨어졌다. 목격자 진술에 따르면 떨어지기 직전 B 씨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A 씨가 B 씨를 안고 뛰어내린 것으로 보인다. 1층 화단에서 발견 당시 B 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A 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다가 숨을 거뒀다.

● 부부 갈등 원인은 여전히 오리무중
부부는 그동안 아파트에서 수차례 다퉈 아래층에서 소음 문제로 여러 차례 항의하기도 했다. 경찰은 금전 문제보다 감정의 골이 깊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부부 갈등의 원인은 쉽게 재단하기 어렵다. B 씨는 이주여성인데다, A 씨도 오래 복역해 친인척과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부부에 대해 자세히 진술해 줄 친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경찰은 “구체적인 사망 원인과 사건 경위는 부검 결과와 추가 조사 결과가 나와야 할 것 같다”며 “부부 갈등이 아무 잘못이 없는 아들의 목숨까지 앗아갔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사건”이라 말했다.

숨진 C 군이 모바일게임 ‘배틀그라운드’ 영상 등을 올리는 게임 유튜버로 활동해왔다. 생전에 활동했던 유튜브 채널에는 누리꾼들의 추모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인모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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