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불평등 문제는 인류가 짊어진 대표적 난제입니다. 19세기에 독일의 카를 마르크스(1818∼1883)는 ‘자본론’을 통해 자본주의의 모순과 빈부 격차 문제를 파헤쳤습니다. 2013년 프랑스의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 교수(사진)는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통해 새로운 차원에서 불평등 문제를 다뤘습니다.
마르크스가 노동가치설(노동력이 상품 또는 잉여 가치의 원천이라는 이론)을 근거로 삼았다면 피케티는 자본 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앞질러 빈부 격차가 더욱 커진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심화하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기원을 분석한 ‘21세기 자본’은 전 세계에서 200만 부 이상 판매됐습니다.
이 책으로 유명해진 피케티가 지난해 두 번째 책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냈습니다. 한국어판 발간을 맞아 8일 파리경제대 강의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방한 계획이 무산돼 온라인으로 한국 기자들과 만난 겁니다.
피케티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경제서라기보다 불평등을 정당화해온 이데올로기에 대한 역사서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한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 비판적 지지 입장을 밝혔습니다. “나는 기본소득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본소득은 생존을 지탱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기초생활비를 의미할 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피케티는 기본소득 실현에 멈추지 말고 자산의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25세가 될 때 1억6000만 원 정도의 기본자산을 주자고 제안했습니다. 자산이 부유층에게 집중되는 것을 줄이기 위해 집을 마련하거나 창업을 구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종잣돈을 사회가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인류가 한 번도 실험해 보지 못한 파격적인 제안입니다.
이달 초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당 초선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기본소득이라는 거대 의제를 화두로 던졌습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된 개념입니다. 정치권에서도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하여 몇몇 인사가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주장해왔습니다. 진보 정당의 전유물 같은 의제를 보수당에서 먼저 던졌다는 점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의견은 분분합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전 국민 기본소득보다는 전 국민 고용보험이 더 정의롭고 공평한 제도라고 주장했습니다. 야권의 잠재적 대선 주자로 거론되는 홍준표 의원은 “기본소득제의 본질은 사회주의 배급제”라고 비판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기본소득 논란에 대해 “한국 여건상 부적절하다”며 선을 그었습니다. 정치권에서의 논의를 정부 차원에서 반대하고 나선 겁니다. 그는 기본소득은 물론이고 2차 재난지원금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홍 부총리가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4가지입니다. 모든 국민에게 줘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 미형성, 재원 마련 문제, 기존 복지 체계에의 영향, 성공한 사례 없음의 이유를 들었습니다.
다양한 관점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 문제를 사회 구조적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나온 마당에 공론의 장이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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