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노송동의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수천만원의 성금을 훔친 2인조가 항소심에서 형량이 추가됐다.
피고인들은 이번 사건이 ‘방치물 절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으나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 않고 오히려 1심보다 무거운 형량을 선고했다.
전주지법 제1형사부(강동원 부장판사)는 17일 특수절도 혐의로 기소된 A(36)씨와 B(35)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1년과 징역 8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년 6개월과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30일 오전 10시 3분께 전주시 노송동 주민센터 뒷편 희망을 주는 나무 주변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6000여만원이 담긴 기부금 박스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경찰은 “성금이 사라진 것 같다”는 주민센터 측의 신고를 받고 목격자 진술과 주변 폐쇄회로(CC)TV 분석과 함께 주민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범행 직전 주민센터 주변에 세워져 있던 SUV 차량 1대가 수상하다는 주민 제보와 함께 해당 차량 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았다.
이후 충남경찰청과 공조해 충남 논산과 대전 유성에서 이들을 붙잡았다. 또 용의자들이 갖고 있던 기부금 6000여만원을 회수했다.
A씨 등은 범행 전날 자정 무렵 논산에서 출발해 오전 2시께 주민센터에 도착한 뒤 ‘얼굴 없는 천사’가 나타난 오전 10시까지 8시간 동안 차량 안에서 기다렸다.
이들은 전주에 오기 전 휴게소 화장실에 들러 화장지에 물을 적셔 번호판을 가려 ‘완전 범죄’를 꿈꿨으나 그 이전 전주에 올 때는 번호판을 가리지 않아 주민에게 덜미를 잡혔다.
주범 A씨는 당초 “유튜브를 통해 이 시기에 ‘얼굴 없는 천사’가 방문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며 “컴퓨터 수리점을 한 곳 더 열기 위해 기부금을 훔쳤다”고 진술했다.
이후 수사 과정에서 태국 마사지 업소를 차리기 위해 돈을 훔쳤다는 정황도 추가로 나왔으나 A씨는 컴퓨터 수리점을 열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회수한 성금 6000여만원을 ‘얼굴 없는 천사’가 기부하려고 했던 노송동주민센터에 전달했다. 이와 함께 범인 검거에 결정적 도움을 준 제보자는 경찰에게 받은 포상금을 모두 기부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익명의 기부자가 불우이웃을 위해 성금을 두고 간다는 사실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된 것을 기화로 이를 훔치기로 마음먹고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 범행을 저질렀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가 실형을 선고하자 피고인들은 양형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했으며, 검찰 역시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A씨 변호인은 “이 사건은 엄밀히 보면 방치물 절도”라면서 “익명의 기부자가 주민센터 밖에 있는 기부자를 기리는 공간에 성금을 두고 가면 적절한 시기에 회수하는 방식인데 이 사건 절취품이 장시간 방치된 틈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그동안 일명 기부 천사라고 하는 사람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동사무소 직원에게 연락해 즉시 성금을 찾아가도록 조치하는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져왔다”면서 “이 같은 내용에 비춰볼 때 방치된 물건이라는 피고인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익명의 기부자의 선량한 마음을 헤아려야 함에도 거룩하고 고귀한 성금을 감히 건드렸다”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마음을 갖기는커녕 이를 훔쳐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이 사건 범행을 위해 유튜브 통해 사전에 치밀하게 공모한 점 등을 종합하면 1심 판결은 가볍다고 판단된다”고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한편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성탄절 전후로 노송동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수천만원이 담긴 종이박스를 몰래 놓고 사라져 붙여진 이름이다.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20년간 놓고 간 돈의 총액은 모두 6억6850만4170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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