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이중저당, 배임죄 해당 안돼…채무자 자신의 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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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6월 18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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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저당권설정계약 체결후 제3자에 근저당권을 설정해준 것은 배임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이중저당이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본 기존 판례를 12년만에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1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47)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6년 6월 A씨에게 18억원을 빌리면서 이씨와 배우자 공동소유인 아파트에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주기로 약정했다.

그런데 이씨는 2016년 12월 해당 아파트에 B사 명의로 채권최고액 12억원인 4순위 근저당권을 설정해줬다가 배임 혐의로 기소됐다.

앞서 1심은 이씨의 행위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면서 이씨가 취득한 재산상 이익을 4억 7500만원으로 보고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배임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했다.

2심은 “아파트 시가와 피해자의 채권액 등을 고려하면 이씨가 배임으로 얻은 재산상 이익은 12억원으로 봐야 한다”며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2년6개월로 형량을 높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씨를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해 파기환송했다.

재판부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하려면,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이 통상의 계약에서의 이익대립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 또는 관리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저당권설정계약에서 당사자 관계의 전형적·본질적 내용은 금전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에 있다”며 “채무자의 저당권 설정의무는 채권자와의 신임관계에 기초하여 채권자의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결국 채무자의 저당권설정의무는 저당권설정계약에 따라 부담하게 된 채무자 자신의 의무이고, 채무자가 저당권을 설정하는 것은 채무자 자신의 사무에 해당할 뿐이므로, 채무자를 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라고 할 수 없다”면서 “따라서 채무자가 저당권설정의무를 위반하여 담보 부동산을 제3자에게 처분하였다고 하더라도 배임죄가 성립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김재형·민유숙·김선수·이동원대법관은 “부동산 매매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이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는 데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담보 목적으로 체결된 저당권설정계약에서 신임관계의 본질은 담보로 제공함으로써 부동산의 담보가치를 채권자에게 취득하게 하는 데 있다”며 “이같은 채무자의 의무는 배임죄에서 말하는 타인의 사무에 해당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앞서 2018년 5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배임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부동산 매도인은 매수인에게 부동산의 소유권을 이전해 줄 의무가 있다”며 “중도금이 지급되는 등 계약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단계에 이른 때에는 매도인은 ’타인(매수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면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바 있다.

대법원은 근저당권설정계약은 금전채무의 변제와 이를 위한 담보가 본질적 내용이기 때문에, 부동산 소유권을 이전해줄 의무를 지는 매매계약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타인의 사무에 관한 엄격해석을 통해 종래의 판결을 변경함으로써 형벌법규의 엄격해석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사법(私法)의 영역에 대한 국가형벌권의 과도한 개입으로 인한 사적 자치의 침해를 방지한다는 데 이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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