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멧 안 써도, 13세 이상이면 OK… 갈길 먼 ‘킥라니’ 안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23일 03시 00분


[생명운전, 멈추고 늦추자] <6> ‘빨간불’ 개인형 이동장치

서울 광화문역 5번 출구 앞에 공유 전동킥보드들이 쓰러진 채 보도에 나뒹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PM기본법’이 마련되면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공유 서비스에도 법적 규제가 적용돼 지정 장소에 제대로 주차하도록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서울 광화문역 5번 출구 앞에 공유 전동킥보드들이 쓰러진 채 보도에 나뒹굴고 있다. 국토교통부에서 준비하고 있는 ‘PM기본법’이 마련되면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수단의 공유 서비스에도 법적 규제가 적용돼 지정 장소에 제대로 주차하도록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1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인근의 한 주차장 앞.

대여한 공유 전동킥보드에 발을 올리자마자 주변 보행자들이 갑자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연습 삼아 아주 느린 속도로 주행했는데도 시민들은 서둘러 자리를 떴다.

전동킥보드를 향한 냉랭한 반응은 요즘 도심을 지나다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대목이다. 여러 공유 전통킥보드 업체가 생겨나며 이제 전동킥보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된 지 오래. 하지만 그만큼 불쾌한 경험도 쌓여갔다. 조모 씨(54)는 “자전거보다 빠르게 달리는데 소리는 잘 안 들려 갑자기 나타나면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고 했다.

‘킥라니.’

요즘 인터넷에선 전동킥보드를 고라니와 합친 신조어 킥라니라 부른다. 지방도로에서 순식간에 차도로 뛰어드는 고라니처럼, 아찔한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존재란 뜻이다. 최근 이런 문제점을 반영해 관련법 개정도 이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안전 확보를 위해선 갈 길이 멀다는 의견이 많다.

○ 전동킥보드 법 개정, 오히려 안전은 뒷전
전동킥보드는 인도를 휘젓는 게 가장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차도에서 운전해도 위험천만한 상황은 자주 벌어진다. 원래 법적으로 전동킥보드는 자전거도로나 자전거 통행이 허용된 혼용보도가 없는 경우엔 차도에서 운전해야 한다. 하지만 차량 운전자들은 전동킥보드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이날 한 택시운전사는 차창까지 내리고 “왜 차도에서 타느냐”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시민 김모 씨(40)도 “보행자 입장에선 차도로 가면 좋겠지만, 차도 위의 전동킥보드가 더 아슬아슬해 보이긴 한다”고 했다.


행정안전부와 경찰청은 이달 초 전동킥보드와 관련해 개정 법률을 공포했다. 도로교통법에 ‘개인형 이동장치(퍼스널 모빌리티·PM)’를 “최고속도 시속 25km 미만, 총중량 30kg 미만인 원동기장치자전거”로 정의했다. PM의 통행방법도 기존 오토바이가 아닌 전기자전거에 준하는 수준으로 만들었다. 법률을 시행하는 12월 10일부터는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PM의 자전거도로 통행이 가능해지며 13세 이상 운전자라면 운전면허 없이도 운전할 수 있다.

하지만 반응은 썩 좋지 않다. 개정 법률이 규제 완화에 초점을 맞춰 전동킥보드 등 PM으로 인한 사고 방지 대책이 부실하단 지적이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PM이 가해 차종으로 분류된 교통사고 건수는 2017년 117건에서 2018년 225건, 2019년 447건으로 증가했다. 2년 만에 약 4배로 늘어난 셈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안전 수칙은 오히려 후퇴한 측면도 있다. 헬멧 등 안전도구에 관한 규정이 그렇다. PM을 오토바이보다 자전거에 가까운 원동기로 취급해 헬멧 착용은 의무에서 권고 사항으로 완화됐다. 현행법은 자전거 운전자도 헬멧 착용을 권고하지만 오토바이와 달리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PM과 자전거의 운행 특성의 차이점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들을 잘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운전자 연령대가 만 13세 이상으로 대폭 낮아진 것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전동킥보드를 오토바이와 같은 기종으로 분류한 건 물론 과했다. 하지만 전기로 동력을 얻는 PM을 자전거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단 의견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학생이 헬멧도 쓰지 않은 채 차도 위를 달리는 모습만 상상해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느냐”며 고개를 저었다.

○ 전동킥보드에 맞는 기본법과 도로 정비 시급
교통안전 전문가들은 “전동킥보드 등 PM에 맞춘 규정을 바탕으로 기본법을 새로이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토바이나 자전거 등 기존 원동기 규정에 전동킥보드를 끼워 맞출 게 아니라 PM의 특성을 적절히 반영한 새로운 법이 필요하단 뜻이다.

국토교통부도 현재 2021년 시행을 목표로 PM 기본법의 내용을 꾸리고 있다. 이제 착수한 단계라 아직 어떤 내용들이 법에 포함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통행 방법 등 최소한의 안전 규정을 마련하고 현재 거의 관리 단속이 이뤄지지 않는 관련 산업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효과는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공유 전동킥보드는 주차와 관련한 규제조차 마련되지 않아 아무데나 널브러져 있는 광경을 자주 마주한다. 최근 몇몇 지방자치단체들은 기존 자전거거치대에 전동킥보드도 주차하도록 정비하는 등 자체적인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PM기본법이 마련되면 보기도 안 좋고 보행도 불편한 이런 점까지 잘 챙겨야 한다”고 했다.

앞으로 전동킥보드가 자전거도로로 대거 유입될 상황도 대비해야 한다. 자전거도로망을 대폭 정비하는 게 급선무다. 국내 자전거도로는 원래도 교통선진국의 자전거 친화적인 도로와 비교하면 열악한 수준이다. 자전거도로가 없는 곳도 많을뿐더러, 중간에 끊겨서 하나로 연결된 ‘망’ 구성도 안 돼 있다. 한 교통전문가는 “안 그래도 도심의 자전거도로는 사고취약지역이라 불리는데, 전동킥보드까지 늘어나면 현재 도로 사정으론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 내다봤다.

국토부는 PM과 관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활발히 논의되던 시기인 3월에 “차도·보도와 구분되는 ‘제3의 도로’ 설계 지침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의 계획을 발표했다. 자전거뿐만 아니라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각종 PM들이 상용화되며 이들 원동기가 통행할 도로 건설이 시급하다는 판단에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바퀴가 작은 점 등 자전거와 구별되는 특성을 고려해 도로의 경사나 턱의 높이를 비롯한 세부 설계지침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사고 나도… 보험 안전판 없는 킥보드 ▼

업체, 기기 결함 때만 소폭 보상
개인 가입 가능한 상품 아예 없어… “책임보험 의무가입 고려할 때”

전동킥보드 시장이 커지면서 사고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전동킥보드 관련 보험은 없다. 이용자는 공유 전동킥보드업체가 가입한 단체보험에 의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전동킥보드가 의무 보험 대상이 아닌 데다 업체마다 적용 조건도 제각각이다.

국내 이용자가 ‘빅3’인 공유 전동킥보드업체 ‘킥고잉’과 ‘라임’은 기기 결함 사고일 때만 보험 처리가 된다. 이용자 과실일 땐 보상금을 받을 수 없다. ‘씽씽’은 이용자 과실 시 100만 원, 기기 결함 시 2000만 원 한도 내에서 보상받을 수 있다. 하지만 세 업체 모두 기기결함을 운영사가 판단한다. 이 때문에 이용자가 결과를 완전히 믿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전동킥보드가 먼저 일상화된 해외에서는 관련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보험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독일은 전동킥보드 운행은 자전거처럼, 보험은 자동차처럼 취급하는 ‘투트랙’ 방식을 쓴다. 최고속도가 시속 20km 이하인 전동킥보드는 운전면허를 요구하지 않고 자전거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 보험에서는 특칙이 없는 한 자동차 관련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한다. 전동킥보드를 타려면 대인·대물 보상을 하도록 하는 자동차보험에 반드시 가입해야 한다. 일본도 전동킥보드를 타려면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우리나라도 12월부터는 만 13세 이상이면 전동킥보드를 탈 수 있어 관련 보험 규정이 명확해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제도 정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시민안전보험’ 보장 대상에 전동킥보드 등 퍼스널 모빌리티 사고를 추가하는 방안이 단기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지자체가 복지 차원에서 보험사와 보험계약을 체결하면 피해 시민이 보험금을 받는 형식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도 서둘러야 한다. 관련 법규를 명확히 만들어 사업자가 배상책임보험에 의무 가입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환희 올룰로(킥고잉) 매니저는 “의무보험 대상이라고 명확히 해주면 보험상품이 다양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이용자도 더욱 안전하게 전동킥보드를 운행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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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 서형석(산업1부) 유원모(산업2부) 김동혁(경제부) 최지선(국제부) 전채은(사회부) 기자
#전동킥보드#킥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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