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2시 광주시 서동 대성초등학교 강당. 서욱 육군참모총장이 김경우 예비역 육군 하사(93)의 가슴에 무성 화랑무공훈장을 달아줬다. 서 총장이 “꽃다발을 여러 개 받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하사는 ‘허허’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밝은 미소를 지었다. 김 하사의 훈장수여식에는 가족 10명이 참석했다. 김 하사의 아들 인호 씨(65)는 “가문의 영광이다. 화랑무공훈장을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했다.
광주 출신인 김 하사는 1951년 4월 입대했다. 육군 9사단에 배치된 김 하사는 다른 부대원 30명과 함께 철원 백마고지에 침투해 중공군을 생포하는 특공대원으로 활약했다. 김 하사는 같은 해 5월 어느 날 새벽 1시 척후병 임무로 백마고지를 오르며 대원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순간 뒤따라오던 다른 대원이 넘어지며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중공군은 침투를 알아챘고 수류탄을 고지 아래로 던지기 시작했다.
김 하사는 수류탄이 터지며 생긴 철조망 파편을 왼쪽 눈에 맞아 시력을 잃었다. 다른 대원들은 대부분 그 자리에서 숨졌다. 김 하사는 몸을 아래로 굴리며 가까스로 백마고지를 내려왔다. 그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뒤 1953년 전역했고 육군은 이듬해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김하사는 전역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했다. 하지만 화랑무공훈장 수여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다. 6·25전쟁 당시에는 긴박한 상황으로 훈장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았다. 김 하사는 ”69년 만에 훈장을 받아 기쁘다“고 말했다.
육군은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대성초등학교에서 참전용사의 이름 등을 기재한 모교 명패를 증정하고 참전용사에겐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 학교는 45명의 참전용사를 배출했다. 이기섭 예비역 육군 중령 등 참전용사 2명은 대표로 모교 명패를 받았다. 김 하사와 다른 유가족 11명은 무공훈장을 받았다. 육군은 1955년부터 6·25전쟁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11만 명에게 훈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