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역의 전설적인 음택 명당으로 제1혈인 사라혈이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 사라오름은 산정화구호를 품고 있는 화산체이다. 이 사라오름을 거쳐 성판악, 거문오름, 붉은오름, 영주산을 거쳐 남산봉까지 이르는 흐름을 제주지역 9개 지맥 가운데 제1지맥으로 구분하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4일 오전 한라산 백록담분화구 서북벽, 해발 1800m에서 고즈넉하게 자리 잡은 무덤을 확인했다. 가로 7m, 세로 9m, 높이 0.7∼0.8m인 돌담은 동물의 접근을 막고 산에 몰아치는 삭풍으로부터 무덤을 감싸 주고 있다. 돌담 안에는 저지대 산소에서 보이는 잔디가 아닌 한라산 고지대 초지의 우점종인 김의털이 무덤을 덮고 있다. 무덤 구석에는 고산 특산식물인 시로미와 눈향나무가 터를 잡았고 한라산 정상 부근에서 바람을 타고 날아온 씨앗이 발아해 가시엉겅퀴가 생겨났다. 무덤에 묻힌 이는 ‘원주 원(元)씨’로, 한라산국립공원이 지정되기 전인 1960년에 무덤이 조성됐다.
고인의 아들인 원모 씨(79·제주 서귀포시 하원동)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난 뒤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계속 생겨서 지관에게 물어보니 ‘마을 주변 밭에 있는 무덤의 위치가 나빠서 그렇다’는 이야기를 듣고 명당을 찾아서 한라산에 이장을 했다”며 “이장하고 나서 수년 뒤 아들을 얻기도 했고 우환도 있었지만 이장을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고인의 후손들은 해마다 한 차례 벌초를 한다. 제주지역에서는 음력 8월 1일을 전후해 벌초를 하는 풍습이 이어져오고 있는데 이들 역시 그 풍습을 따르고 있다. 고인은 생전에 한라산 고지대에서 소를 키웠다. 방목을 했던 그 자리에 묻힌 것이다. 지관이 찾은 묏자리는 제주의 6대 음택(陰宅) 명당으로 알려진 곳으로, 그중 하나인 ‘해두명(亥頭明)’이다. ‘돝트멍’ 또는 ‘돗두명’ 등으로도 불리는 이유는 돼지머리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 씨 묏자리는 해두명 혈지에서 가장 고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 용암흐름과 오름 형세로 파악하는 독특한 풍수
풍수는 묏자리를 찾는 음택 풍수, 집터나 건물터 등을 물색하거나 평가하는 양택(陽宅) 풍수 등으로 나뉜다.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등으로 쓰이는 말들이 풍수에서 유래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의 줄임말로 중국에서 국내로 들어온 뒤 자생 풍수와 섞였다는 주장이 있다. 풍수를 미신으로 보는 이도 있지만 건물이나 집을 짓고 이사할 때, 부동산을 구입할 때 영향을 미칠 정도로 지금도 생활 곳곳에서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일부 생태학자나 지리학자 등은 풍수를 ‘생리적으로 쾌적한 지형·기후 조건을 갖춘 명당을 찾아가는 인간의 적응 전략’이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조선시대 풍수가들에게 제주지역은 남달랐다. 산의 흐름인 지맥(地脈), 물의 흐름인 수맥(水脈) 등으로 명당을 찾아내는 육지의 풍수와는 달리 제주지역은 지맥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로 섬이 형성되었기에 지맥보다는 용암의 흐름으로 땅의 기운을 봤다. 한라산은 지맥을 일으키는 종산(宗山)이다. 섬의 형태는 남북보다 동서로 긴 장축을 형성하고 있는데 곳곳에 솟아오른 오름(백록담을 제외한 화산체)과의 연결성으로 지맥을 해석한다.
조선시대 임금의 묏자리를 찾는 어지관이 쓴 것으로 보이는 제주풍수의 고전인 ‘과영주산세지(過瀛州山勢誌)’는 ‘영주산, 즉 한라산은 마치 백학이나 푸른 매의 형국으로 주위 사방이 높고 마치 장군이 홀로 앉아 있는 듯하다. 머리는 서쪽으로 향하고 꼬리는 동쪽으로 내려 조종산(祖宗山)인 백두산을 돌아보는 형국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런 해석 등을 바탕으로 제주에는 음택의 전설적인 명당인 ‘6대 명혈’이 전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 4개가 한라산 해발 1200m 이상에 있는 고산 명혈이다.
● 한라산국립공원 4대 음택 명혈
제1혈은 ‘사라혈’로 산정화구호를 품고 있는 사라오름에 있다. 뱀이 개구리를 잡아먹으려는 ‘생사축와형(生蛇逐蛙形)’ 형상으로 ‘하늘이 감추고 땅이 감춘다’는 명혈지다. 지세와 풍수가 빼어나 풍수의 이상향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판악탐방로 입구에서 5.8km 떨어진 지점에서 오름 정상까지 갈 수 있는데 산정화구호에서 전망대로 올라가는 초입에 무덤 2기가 보인다. 제주조릿대가 덮인 것으로 보면 벌초를 하지는 않는 듯했다. 오름 등성이를 포함해 명혈 영역에 무덤 3기가 있다.
제2혈은 ‘의항혈(蟻項穴)’로, 관음사탐방로 입구에서 정상 방면으로 5.6km 떨어진 개미목 또는 개여목으로 불리는 곳이다. 개미의 머리 형상으로 수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는 대장군의 형국인데 혈지 영역에 무덤 7기가 있다. 제3혈은 중국 송나라 유학자인 주자의 부친이 묻혀 있다는 전설을 간직한 ‘영실혈(靈室穴)’이다. 아침에 봉황새가 울어대는 형국인 봉명조일형(鳳鳴朝日形)의 지세로 읽히며 무덤 7기가 있다. 제4혈인 해두명 영역에서도 8기의 무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라혈, 의항혈은 한라산 탐방로에 있어 일반인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영실혈, 해두명 등 2개 혈지는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에 있다. 이 명당들에 여러 무덤이 있는 것은 지관 각각의 해석에 따라 명당의 위치가 달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고산지역 명당에 위치한 무덤은 대부분 장례 당시 봉분을 한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서 시일이 지난 뒤 뼈를 수습해 이장한 것이다. 시신을 운구해 한라산 고지대까지 이동하려면 비용이 많이 들고 숲과 경사가 있는 동선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상당한 제약이 따랐기 때문이다.
명당으로 알려진 이 지역들 외에도 한라산국립공원 구역에 있는 물장오리오름, 방애오름, 큰두레왓 등 오름에도 무덤이 있다. 조상을 명당에 모시고, 음덕으로 발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2005년 명당자리를 찾다가 조난사고를 당할 정도로 명당에 대한 관심은 이어지고 있지만 관리가 힘들어 음택 명당의 무덤을 저지대로 이장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명당을 찾는 일이 중요하지만 풍수의 논리 가운데 ‘선과 덕을 행한 사람에게 명당이 주어진다’는 의미로 윤리성을 강조한 ‘소주길흉론(所主吉兇論)’도 있다. 명당에는 주인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풍수 전문가인 신영대 제주관광대 교수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지세가 변화하고 물상도 변하기 때문에 영원한 명당은 없다”며 “발복 기간에 장단(長短)과 맺음이 있고 지기(地氣)의 성쇠는 필연적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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