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억 원대 회계 비리를 저지른 휘문고등학교(서울 강남구 소재)가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지위를 잃고 일반고로 전환될 위기에 놓였다. 회계비리를 이유로 운영성과평가 없이 자사고 취소 절차를 밟는 것은 휘문고가 처음이다.
1906년 설립된 휘문고는 대표적인 강남 지역 명문 고등학교로, 1978년 현재의 대치동으로 이전한 뒤 ‘강남 8학군’의 중심 학교로 꼽혔다. 지난 2011년 자사고로 지정됐다.
서울시교육청은 9일 휘문고에 대한 자사고 지정 취소 결정을 내리고 학교 측에 이에 따른 청문실시통지서를 보냈다고 밝혔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법조인들에게 자문해 ‘명백한 회계 부정이 발견돼 교육감 직권 취소를 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현재 남은 자사고들이 2025년이면 일반고로 전환되겠지만, 이처럼 부정이 심각한 학교를 그때까지 유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육감은 자사고가 ‘거짓이나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한 경우’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전국 특목고·특성화중 가운데 운영성과 평가(재지정 평가) 기준 미달이나 학교의 자발적 전환 신청이 아닌 이유로 지정 취소 처분을 받은 휘문고가 처음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모두 9곳의 자사고에 대해 지정 취소 결정을 내렸는데, 이 가운데 8곳은 재지정 평가 미달, 1곳은 학교 신청에 따른 결과였다.
휘문고 측은 오는 23일 진행되는 청문에서 입장을 소명할 예정이다. 시교육청은 교육부에 동의를 신청해, 승인되면 내년부터 휘문고를 일반고로 전환할 방침이다.
앞서 시교육청은 지난 2018년 민원감사를 통해 학교법인 휘문의숙 8대 명예이사장 김모 씨가 지난 2011년부터 2017년까지 6년간 법인사무국장 겸 휘문고 행정실장 등과 공모해 A 교회로부터 학교체육관과 운동장 사용료 등 학교발전 명목의 기탁금을 받는 방법으로 총 38억2500만 원의 공금을 횡령한 사실을 적발했다.
명예이사장은 학교법인 신용카드를 사용할 권한이 없는데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간 2억390여만 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하고 카드대금 일부를 학교회계에서 지출하기도 했다. 명예이사장의 아들인 당시 이사장도 이 같은 행위를 도운 것으로 확인됐다.
휘문고는 학교 성금을 회계로 편입하지 않고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학교회계 예산을 부적정하게 집행하기도 했다.
당시 시교육청은 명예이사장과 이사장, 법인사무국장 등 7명을 고발했다.
재판에 넘겨진 명예이사장은 1심 선고 전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다. 이사장과 법인사무국장은 지난 4월 대법원에서 각각 징역 4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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