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죄 확정 따라 교육감 직권 처분… 교육부 동의땐 내년 일반고 전환
일각 “판결만으로 처분 과해” 지적
서울 강남의 인기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휘문고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받았다. 학교 법인 관계자들의 회계부정 혐의에 대해 최근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함에 따라 서울시교육감이 직권으로 지정취소를 내린 것이다. 자사고를 직권으로 지정취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은 ‘5년 주기 재지정 평가’에서 기준점에 미달한 학교를 탈락시키거나, 자발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원하는 학교에 한해 지정취소를 해왔다.
○ 자사고 첫 직권 취소…사유는 ‘회계 부정’
9일 서울시교육청은 최근 학교법인 휘문의숙 관계자의 횡령 등 혐의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확정된 데 따라 교육감 직권으로 자사고 지정취소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교육감 직권취소의 법적 근거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91조 3항. ‘교육감은 자사고가 거짓이나 그 밖의 부정한 방법으로 회계를 집행한 경우에 지정취소를 할 수 있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교육과정이나 입시 관리상 중대한 문제가 드러났을 때에도 같은 처분이 가능하다.
앞서 교육청은 2018년 감사를 통해 휘문고 학교법인인 휘문의숙 제8대 명예이사장이 법인 사무국장과 공모하고 약 38억2500만 원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학교회계 예산의 부적절한 집행 등 14건의 지적사항도 발견했다. 이에 대법원은 명예이사장의 횡령을 묵인한 이사장과 공모한 법인 사무국장에게 각각 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번 교육감의 직권취소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적법한 절차라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2년 전 비리를 적발했지만 사법기관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며 신중하게 내린 결정이라는 설명이다.
○ ‘특권 학교 폐지’ 속도 내는 조희연 교육감
교육청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교육계 안팎에선 이번 조치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약 이행을 위한 속도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대원·영훈국제중을 지정취소한 데 이어 회계부정을 이유로 자사고를 직권 취소한 것도 조 교육감이 밀어붙이려는 ‘특권 학교 폐지’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감사 결과와 대법원 판결만으로 이런 처분을 내린 것이 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서울시교육청의 재지정 평가에서 입시부정이 적발된 A자사고의 경우 ‘감사 및 지적’ 항목에서 큰 감점을 받았음에도 자사고 지위를 유지한 바 있다.
휘문고는 23일 지정취소 처분에 관해 청문 절차를 밟는다. 조 교육감은 이를 토대로 교육부에 지정취소 동의 요청을 보낼 예정이다. 교육부가 동의하면 휘문고는 2021학년도부터 일반고로 전환된다. 다만 학교 측이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행정소송을 이어갈 경우 당분간 그 지위가 유지될 수도 있다. 휘문고 관계자는 “교육청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학교의 명예가 실추된 점을 감안해 다양한 법적대응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소정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