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 사망]2011년 野 단일후보로 정치 데뷔
서울시장 재보선 당선… 연거푸 3선, 2017년 대선 준비 본격 나섰지만
국민 마음 못얻자 “경선 불참”… 2022년 대선 의지 불태웠는데
결국 극단적 선택으로 도전 멈춰
“우리 시대를 새로운 시대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다.”
2011년 9월 6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백두대간 종주를 갓 마쳐 턱수염이 가득한 한 남성이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를 껴안았다.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을 거치며 시민사회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던 박원순 변호사가 ‘정치인 박원순’으로 거듭난 순간이다. 안 대표의 전격적인 양보에 힘입어 야권 단일 후보가 된 박원순 변호사는 한 달 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서 당선됐고 2014년, 2018년 선거에서도 연거푸 당선됐다. 서울시장 사상 처음으로 3선에 성공한 박 시장은 이제 마지막 정치적 도전인 차기 대선에 나서려고 했지만 9일 극단적인 선택으로 도전을 중단하게 됐다.
○ “내 직업은 ‘소셜 디자이너’”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으로 활동 무대를 옮긴 박 시장은 2011년 나경원 후보, 2014년 정몽준 후보, 2018년 김문수 후보 등 보수 진영의 후보들을 연이어 물리쳤다. 3선에 성공하며 정치적인 입지도 한층 강화됐다.
정치 입문 전부터 명함에 ‘소셜 디자이너’라고 적고 다녔던 박 시장은 시장 당선 뒤에도 이 호칭을 가장 좋아했다. “패션 디자이너, 인테리어 디자이너처럼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하면 조금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까 이런 걸 늘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박 시장의 설명이었다. 그의 공관 1층 절반은 지금까지 각종 사회 이슈와 관련해 모았던 국내외 자료와 신문 스크랩, 연구서들로 꽉 차 있다. 박 시장은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걸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늘 이를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를 바꾸고 싶다는 그의 열망은 대선 도전으로 이어졌다. 박 시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촉발된 2017년 대선 준비에 본격 나섰다. 그러나 낮은 대중적 지지율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박 시장은 “정말 대한민국을 새롭게 바꾸겠다는 열망으로 열심히 노력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며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박 시장과 가까운 한 인사는 “2017년 대선을 준비하며 시장 선거와 대통령 선거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박 시장이 절감했다”며 “2022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긴 호흡으로 준비하겠다는 의욕이 강했다”고 말했다.
당내 세력 부족을 절감한 박 시장은 4·15총선을 앞두고 ‘박원순계’의 출마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그 결과 행정부시장 출신의 윤준병 의원, 정무부시장 출신의 김원이 의원, 비서실장 출신의 천준호 의원 등이 21대 국회에 입성했다.
○ “대통령은 운명적인 직책”
아름다운가게 등으로 시민사회의 활동 방식 자체를 바꾼 박 시장은 시정에서도 아이디어맨이었다. 하지만 시장 임기 내내 박 시장은 “각인되는 성과가 없다”는 평가도 받았다. 박 시장 스스로도 “박원순 하면 팍 떠오르는 브랜드가 없다는 걸 안다”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토목, 개발로 인기를 끄는 정책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대신 그는 ‘서울로(路) 7017’과 같은 도시재생, 공공자전거인 ‘따릉이’ 등 생활 밀착형 정책에 집중했다.
부동산 대책 등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할 사안은 종종 즉흥적으로 밀어붙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2018년 “여의도를 통으로 개발할 것”이라며 여의도·용산 개발 청사진을 밝혔던 게 대표적이다. 곧장 관련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자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중앙정부와 논의해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런 우여곡절에도 박 시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국면에서 재난기본소득 논의를 주도하며 차기 대선 준비를 이어갔다. 박 시장은 6일 열린 민선 7기 2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선과 관련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자기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안 되고 싶어도 하게 되는 운명적인 직책”이라고 했다. 박 시장은 정치 입문 이후 9년 동안 꾸준히 그 운명의 자리를 준비했지만, 이날 그의 정치 인생도 갑작스레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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