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2시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실. 박원순 전 서울시장(64)의 성추행 의혹 관련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재련 변호사가 휴대전화 화면이 담긴 대형 사진 한 장을 공개했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법률 대리인이다.
“시장님 님이 나를 비밀 대화에 초대했습니다.”
보안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의 비밀 대화방 화면에 이 같은 안내 메시지가 찍혀 있었다. 해당 대화방 상단에는 박 전 시장의 얼굴이 담긴 프로필 사진이 있었다. 김 변호사는 “올해 2월 6일 박 전 시장이 A 씨를 이 대화방에 초대한 증거”라며 “당시는 (A 씨가) 비서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다른 부서에서 근무할 때다. 텔레그램으로 비밀 대화를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은 당사자 중 한 명이 ‘대화내용 지우기’ 버튼을 누르면 이전까지 나눈 모든 대화 기록이 지워진다.
○ 집무실 침실로 불러 “안아 달라”며 신체 접촉
김 변호사 등이 이날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A 씨가 2017년 비서로 근무하기 시작한 이후 4년간 A 씨를 성추행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집무실 안에 있는 침실로 A 씨를 불러 ‘안아 달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고 주장했다. A 씨 측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즐겁게 일하기 위해 ‘셀카’를 찍자”면서 A 씨를 집무실로 불러 셀카를 찍는 동안 신체를 밀접 접촉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박 전 시장이 (A 씨의) 무릎에 난 멍을 ‘호’ 해주겠다며 자신의 입술을 A 씨의 무릎에 접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성추행은 A 씨가 퇴근한 뒤에도 이어졌다고 한다. 김 변호사 등이 이날 공개한 ‘범죄사실 개요’에 따르면 박 전 시장은 퇴근한 A 씨를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해 사생활을 언급하고, 음란문자를 보냈다. 박 전 시장이 이 대화방에 속옷 차림을 한 자신의 사진을 올린 적도 있다고 한다. 김 변호사는 “A 씨가 (박 전 시장이) 음란한 문자와 개인적인 사진을 보내온 것에 대해 친구와 동료 공무원들에게 보여주며 피해를 호소했다”고 말했다.
○ “A 씨, 시장 비서 지원한 적 없어”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은 A 씨가 지난해 다른 부서로 이동한 뒤에도 지속됐다는 게 A 씨 측 주장이다. A 씨가 비서로 일하는 동안 텔레그램으로 음란한 문자와 사진을 보냈던 박 전 시장이 업무적으로 연관이 없는 A 씨를 또다시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으로 초대했다는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가해 수위가 점점 심각해져 A 씨가 부서 변경을 요청했지만 시장이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일반 공무원으로 서울시에 임용돼 다른 기관에서 근무하던 A 씨가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시장 비서실로 오게 된 배경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김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A 씨가 서울시장 비서직으로 지원한 사실이 없다. 서울시 측 전화를 받고 당일 오후 시장실 면접을 봤는데 같은 날 비서실에서 비서로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서울시장이 갖는 엄청난 위력 속에서 어떠한 거부나 문제 제기를 할 수 없는 전형적인 위력 성폭력의 특성을 그대로 보였다”며 “이 사건은 결코 진상 규명 없이 넘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은 “이미 피해자가 사과받고 책임이 종결된 것 아니냐는 일방적인 해석이 피해자에게 엄청난 심리적 압박을 주고 있다”며 “형사 사법절차상 수사와 재판을 거쳐 제대로 응당한 처벌을 받도록 하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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