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저인 1.5% 인상(시간당 8720원)으로 의결된 2021년 최저임금은 노사가 아닌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 공익위원 9명이 결정했다. 사실상 ‘캐스팅 보트’를 쥔 공익위원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일자리 감소 등이 우려되자 14일 오전 2시경 8720원의 공익위원 제시안을 내놓은 뒤 바로 의결에 나섰다. 노동계는 전원 퇴장하고, 사용자는 반대표를 던졌지만 결국 공익위원들의 뜻에 따라 내년 최저임금이 결정됐다.
● “농구공만큼 커진” 최저임금 부담
공익위원들은 14일 기자회견을 열어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후 가장 낮은 인상률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전에는 야구공만 했던 최저임금이 이제는 농구공만큼 커졌다”며 “코로나19 위기 국면에서 기업이 일자리를 유지하는 데 최저임금의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일자리 유지를 위해 내년도 최저임금을 최대한 억제했다는 얘기다.
이번 심의에서는 최저임금의 취지와 함께 방향성 검토의 필요성도 논의됐다. 권 교수는 “이제 최저임금이 중위근로자 평균임금의 60% 수준까지 올라왔다”며 “언제까지 최저임금을 올려 저임금 근로자 복지를 시행할지에 대해 공익위원들 사이에서 논의가 많았다”고 전했다.
최저임금은 당초 저소득 근로자 임금 상승을 위해 시작됐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일반기업보다 높은 인상률을 적용해 왔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지급하는 영세기업의 돈으로, 저소득층 복지를 늘리는 이른바 ‘을(乙)들의 전쟁’이란 문제 제기가 계속됐다.
올해 공익위원들은 근로자위원과의 간담회에서도 “앞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복지는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근로장려금 등 정부의 사회안전망 제도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최저임금과 관련해 앞으로도 ‘속도조절’ 방향성이 유지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 노사정 대화에도 부정적 전망
올해 최저임금 상승률이 역대 최저까지 떨어지면서 최근 최저임금 변동 폭이 지나치게 크다는 목소리가 많다. 문재인 정부 첫 해인 2017년에 결정한 2018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16.4%였다. 2001년(16.6% 인상)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았다. 이듬해에는 10.9%였다. 그러나 올해 2.9%를 거쳐 내년엔 1.5%가 됐다. 한 사용자 측 관계자는 “그만큼 기업 입장에서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현 정부 출범 초기에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실행 방안으로 내세우 탓이다. 이후 정책 방향이 바뀌고 코로나19 등 위기를 겪으며 최근 2년 동안에는 오히려 역대 평균 인상률(8.8%)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급격한 변동에 최임위는 “독립적인 결정”이라고 밝혔다. 박준식 최임위원장은 “공익위원 9명은 누구의 영향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의사 결정을 했다”고 강조했다.
노동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성명을 내고 “최저임금은 죽었다”며 “사측이 아닌 공익위원들이 (1.5% 인상을) 내놓은 것에 참담하다”고 비판했다. 삭감 내지 동결을 기대했던 경영계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최저임금법을 준수하고 고용유지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1.5%의 최저임금 추가 인상은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한국편의점주협의회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처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최저임금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청년층과 취업 대기자 등 취약층의 단기 일자리가 더욱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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