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 사건 ‘스모킹 건’ 없어 결국 무릎꿇은 검찰

  • 뉴시스
  • 입력 2020년 7월 15일 16시 08분


'의붓아들 살해혐의' 법원 "직접 증거없어 유죄 어렵다"
사망 원인 찾고도 범인 못밝힌 황당한 사건으로 남아

“정황증거만으로 피고인 고유정의 의붓아들 살해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

법원의 판단은 무죄였다.

광주고법 제주제1형사부(왕정옥 부장판사)는 15일 전 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37)에게 1심과 마찬가지로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이 입증에 공을 들인 의붓아들 살해 의혹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하며 검찰 측 항소를 기각했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무죄 판단의 근거는 검찰의 입증 부족이다. 재판부는 “살인죄에 대한 혐의 입증은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지만, 의심스러운 사정을 확실히 배제할 수 없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경험법칙상 고의적 범행이 아닐 여지를 확실하게 배제할 수 없다면 그 추정의 번복은 직접증거가 존재할 경우에 버금가는 정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현 남편 옆에서 의붓아들 살해 시도 어려워

재판부는 평소 얕은 수면 습관으로 잠에서 자주 깨어나는 현 남편 옆에서 고씨가 의붓아들을 살해하는 것은 어렵다고 봤다.

범행 발각이라는 위험을 무릅쓰고 대담한 행동을 하기에는 동기가 부족하다는 점도 부각했다. 재판부는 “고씨가 현 남편을 상대로 적개심을 드러냈을 뿐 피해자를 상대로 분노를 표출하거나 복수를 다짐하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수사과정에서 현 남편이 고씨가 평소 피해자에게 엄마로서 잘해주려고 노력했다는 진술을 한 점, 현 남편과의 원만한 혼인관계를 위해서는 피해자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또 “고씨가 현 남편과 감정적인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싸우던 중이었음에도 피해자를 데려오기 위해 배냇머리를 챙겨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피해자를 위해 병원 성장클리닉에도 진료를 예약하는 등 청주집으로 유인해 살해할 의도였다면 번거롭게 구체적인 지시를 하거나, 진료예약을 할 이유가 없어보인다”고 말했다.

◇ “법의학자 증언 법정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위험”

항소심은 검찰 측 증인으로 나섰던 법의학자와 부검의 등의 진술 내용을 법정 근거로 완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도 내놨다.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의도적인 힘이 가해져 사망에 이르렀다는 법의학자와 다른 감정인의 의견은 부검 결과를 토대로 사후적으로 추론한 것이다”며 “그러한 의견을 완전히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는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어 “피해자가 어린 나이고 시신의 상태에 따라 점출혈 발생과 사체 강직의 정도가 상이할 수 있다”며 “피해자가 당시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한 상태여서 약물 부작용에 의한 사망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심과 같은 판단이 나오자 피해자 측 가족과 변호인이 참석한 방청석에서는 낮은 탄식 흘러나오기도 했다. 현 남편인 A씨는 판결 내용이 무죄쪽으로 기울자 방청 도중 법정을 빠져나갔다.

2심 재판부마저도 검찰 측 공소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의붓아들 죽음은 ‘원인’을 찾고도 ‘범인’은 가려내지 못한 다소 황당한 사건으로 남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담담한 자세로 선고를 듣던 고유정은 무기징역 선고가 내려지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곧바로 법정을 빠져나갔다. 약 10여분 뒤 고씨는 체념한 듯한 얼굴을 하며 호송차에 올랐다.

고씨는 지난해 5월25일 오후 8시10분에서 9시50분 사이에 제주시 조천읍의 펜션에서 전 남편인 강모(사망당시 36세)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후 바다와 쓰레기 처리시설 등에 버린 혐의(살인 및 사체손괴·은닉)로 재판에 넘겨졌다.

또 고씨는 같은해 3월2일 침대에 엎드린 자세로 자고 있는 의붓아들의 등 위로 올라타 손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침대에 파묻히게 눌러 살해한 혐의도 받았다.

[제주=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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