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소 사실이 사전에 유출된 의혹이 제시됐지만 고소 사실을 알 수도 있던 여성단체와 경찰 등은 모두 이를 전면 부인하면서 해당 사건은 오리무중에 빠진 모양새다.
현재로서 모든 가능성을 놓고 생각했을 때 8일 피해자 측이 경찰에 처음 고소 사실을 전한 시점과 경찰의 보고라인, 서울시 측의 행동 등을 종합해보면 크게 Δ피해자 측이 접촉했던 여성단체 혹은 관계자 Δ고소를 접수한 경찰 Δ박 전 시장 피소 사실을 보고 받은 청와대 라인까지 유출 의혹을 받는다.
하지만 해당 관계자들과 기관 측은 모두 유출 의혹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피해자 지원단체인 한국성폭력상담소와 경찰 모두 고소사실이나 고소장을 피고인에게 유출한 바가 없다고 부인했다. 청와대 역시 13일 대변인 서면을 통해 ‘청와대는 박 시장에게 피소 사실과 관련된 내용을 통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임 특보가 8일 오후 3시 전 알게된 박 시장 풍문…여성단체 가능성도
22일 취재를 종합해보면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이 전달된 경위는 크게 2가지로 보인다. 첫 번째는 임순영 서울시 젠더특보가 8일 늦어도 오후 3시에 알게 된 박 시장 관련 풍문이며 두 번째는 서울시 관계자들이 오후 9시30분쯤부터 공관에서 임 특보를 포함해 비서실 관계자들이 본격적인 대책회의를 열 때 알았을 것으로 보이는 피소 정황이다.
임 특보는 오후 3시쯤 박 전 시장에게 ‘실수한 일이 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특보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울시 외부 관계자에게 박 전 시장에게 ‘불미스러운 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장 집무실로 가 실수한 일이 있냐고 물었다고 한 바 있다. 당시 임 특보는 성추행 피소 등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 특보가 전달받은 박 전 시장 피소와 관련된 풍문은 피해자가 접촉했던 여성단체나 관계자를 통해서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는 5월12일부터 상담을 받기 시작했고 고소 건을 1달 정도 고민한 것으로 봐서는 주변 단체를 통해 퍼졌을 수 있다. 임 특보가 과거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에서 오래 일한 경험을 미루어볼 때 여성단체 관계자 등을 통해서 내용이 유출됐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임 특보는 20일 서울 성북경찰서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밤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지만 현재로서는 피소 유출 정황에 대해서는 경찰이 아직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가지 않은 모양새다. 경찰 관계자는 “유출과 관련해서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에 있다”며 “(임 특보에게) 유출 정황이 만약에 나타난다면 검찰의 수사 진행 상황을 파악해서 경찰도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피해자인 전직 비서 A씨를 변호하는 김재련 변호사는 8일 오후 2시28분에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담당 팀장에게 전화해 ‘중요한 사건이다. 서울시 높은 분이니 서울청에서 조사해달라’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김 변호사는 ‘높은 분’이라고 언급했지 박 전 시장이라고 말은 하지 않았다.
아울러 김 변호사 또한 21일 취재진에게 “저는 경찰에서 유출 안 됐다고 본다, 굉장히 열심히 수사해주고 있다”고 말한 정황으로 봐서는 경찰에서 임 특보로 바로 피소 예정 사실이 유출됐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또한 김 변호사는 ‘여성단체를 통해 임 특보에게 피소 사실이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만 답했다.
◇서울시 관계자들 대책 회의 때 피소 사실은 누가 흘렸나?
20일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권영세 미래통합당 의원이 제공한 타임라인에 따르면 오후 4시30분쯤 피해자 측이 고소장을 접수한 이후 오후 5시30분까지 여청팀장의 보고를 통해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으로 보고가 들어가게 된다.
경찰은 오후 4시30분쯤부터 5시30분쯤까지 실무라인부터 고위층까지 박 전 시장에 대한 피소 사실을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오후 9시30분쯤 임 특보는 박 전 시장, 서울시 변호사 등과 함께 대책회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특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늘 하던 현안 회의”라며 당시 피소사실을 알지는 못했다고 주장하나 긴급하게 열린 만큼 대책회의로 해석되는 상황이다.
아울러 고한석 전 비서실장이 박 전 시장이 사망하던 날이었던 9일 이른 아침 임 특보로부터 박 시장의 피소 사실을 전해들은 정황도 나오고 있다.
고 실장이 언론에 “박 시장이 고소장의 구체적 내용이나 고소장이 접수됐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오전 9시에 고 실장이 박 전 시장과 공관에서 회의를 하고 오후 1시39분쯤 마지막으로 통화를 하는 등 긴박했던 정황이 드러났다. 피소 사실이 적어도 9일 오전에는 서울시 정무라인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경찰이나 청와대 등 당국에서 새어나갔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8일 오후 6시쯤에는 경찰 고위 관계자들이 박 전 시장의 피소 사실을 알게됐기 때문에 서울시 관계자가 풍문에 대해 구체적인 피소 사실을 물어봤을 경우 답을 했을 상황도 유추할 수 있다.
여성단체가 아닌 경찰이나 청와대 쪽에서 피소사실을 박 전 시장의 측근에게 알려줬다면 공무상 비밀누설, 공무집행방해죄 등이 적용될 수도 있다.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는 20일 청문회에서 “현재까지 모든 사황을 종합한 결과 경찰에서 피소 사실이 유출된 정황은 없다”면서도 유출 과정에서 경찰의 잘못이 있다면 마땅히 책임을 진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피해자 측은 지난 13일 첫 기자회견을 통해 “고소와 동시에 피소고인에게 수사상황 전달했고 서울시장한테는 수사 시작도 전에 증거인멸 기회 주어진다는 점 우리는 목도했다”며 “누가 이런상황에서 위력 성폭력 피해 사실 고소하겠나”고 규탄했다.
현재 박 전 시장의 피소 유출 의혹 수사는 서울 중앙지검에서 담당하며 21일까지 경찰에 사건 관련 지휘를 내리지는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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