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한 정수장에서 부화한 붉은 실지렁이 모양의 깔따구 유충이 수도관을 타고 가정까지 이동해 수도꼭지로 나오는 국내 초유의 사태가 불거졌다. 인천 시민들은 ‘수돗물 유충’으로 인해 불안과 혼란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인천시는 정부의 매뉴얼을 따랐다는 입장을 내놓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실제 지자체 수돗물 관리 근거가 되는 수도법이나 하위 법령에도 “깔따구”란 단어는 찾을 수 없다. 그러나 법학계는 법령에 깔따구를 일일이 명시하지 않더라도 수돗물을 먹을 수 없게된 이상 해당 지자체가 이번 사태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담당자에게 ‘과실’을 얼마나 따질 수 있는지가 향후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정수장서 깔따구 발견된 인천시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 주장
23일 국가법령정보센터에 따르면, 수도법 제2조는 수도시설 관리를 위해 노력해야할 책무가 시장·군수 등 지자체장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수도사업자는 제2조에 따라 수돗물을 안전하게 공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물론 수도법에 ‘깔따구 유충이 수돗물에 포함되서는 안된다’는 식의 내용이 구구절절하게 실려 있지는 않다. 하위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에도 ‘깔따구’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수도법 제26조는 수도를 통해 음용을 목적으로 공급되는 물에 Δ병원성 미생물에 오염되었거나 오염될 우려가 있는 물질과 Δ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무기물질 또는 유기물질 Δ심미적(審美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 Δ그 밖에 건강에 해로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이 포함되어선 안된다고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천시는 일단 깔따구가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입장이다. 인천시는 지난 14일 보도자료에서 국립생물자원관 관계자의 말을 빌려 “국내에 알려진 깔따구류가 유해하다고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 인천시의 주장대로라면 건강에 해로운 수돗물을 공급해선 안된다는 법조항에는 어긋나지 않는다.
◇학계 “깔따구 떠있는 물 먹을 수 있나…법 저촉 소지 있다”
그럼에도 법학계는 해당 지자체에 법 저촉 소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징그럽게 생긴 깔따구 유충을 두고 수도법 제26조의 “심미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환경부 고시의 ‘심미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물질’ 리스트에 깔따구가 포함되지 않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다. 고시 등의 하위법령으로 상위 법률을 옭아맬 수는 없는 탓이다.
김차동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깔따구가 떠다니는 물을 보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겠나”며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가 얼마나 많은데 일일이 법에 열거하지 않았다고 해서 음용수 기준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면 궤변에 불과하다”고 했다.
이어 “이는 명백한 잘못이며 앞으로 담당자의 책임을 논하게 된다면 과실 여부가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과실은 예견이나 회피가 가능한데도 만연히 주의를 다하지 않아 그러한 결과를 초래했을 때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환경부 매뉴얼이 ‘과실’ 판단 기준…“작은동물 유입 막아야” 적시
환경부가 지자체에 제시한 수돗물 관리 ‘매뉴얼’은 과실 여부를 판단할 기준이 될 수 있다. 깔따구가 정수시설에서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내용이 매뉴얼에 들어 있다면 담당자에게 이번 사태에 대한 예견 가능성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커지기 때문이다.
일례로 ‘상수도시설 유지관리매뉴얼’에는 “배수지 통풍설비 등으로부터 곤충 등 생물이 침입하면서 송·배수 오염이 일어난다”며 “외부로부터 빗물, 먼지, 작은동물, 곤충 등이 들어가지 않도록 방충망 등을 점검하고 정비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또한 수도사업자가 ‘자기 책임’을 전제로 시설을 설계할 때 참고할 내용을 담은 ‘KDS 57 10 00 상수도설계 일반사항’ 기준으로는 정수시설의 환기설비와 관련해 “외부로부터 빗물, 먼지 및 작은 동물 등이 들어가지 못하는 구조”여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 깔따구는 작은동물 아닌가…인천시 “환경부 매뉴얼 따랐다”
인천시는 매뉴얼을 따랐다는 입장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통화에서 “인천시는 정수장 설계기준 매뉴얼 기준을 이행하고 있다”며 “환경부로부터 (매뉴얼의) 어떤 부분이 이행되지 않았는지 통보받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수도법 제62조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은 수도시설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수도사업자에 운영 개선이나 필요한 조치를 명할 수 있는데도, 환경부가 적절하게 지휘·감독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러면서도 이 관계자는 설계기준의 ‘작은 동물’에 깔따구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러한 인천시 입장과 달리 생물학적으로 깔따구는 동물계→절지동물문→곤충강→파리목→깔따구과에 속한 크기 1㎝ 가량의 동물(곤충)이다.
매뉴얼 이행 여부를 둘러싼 인천시와 환경부의 신경전은 가열되는 모양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인천의 ‘관리 부실’에 대해선 합동정밀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인천시가 상식 이하의 대응을 보이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학전문대학교 교수는 “법에 ‘깔따구가 수돗물에 포함되면 안된다’고 적혀 있지 않더라도 수돗물에서 유충이 나온다면 지자체가 곧바로 원인 규명에 착수하고 주민들에게 재발 방지를 약속하면서 보상을 하겠다고 하는 게 상식이 아니겠나”면서 “이번 깔따구 사태에 대한 인천시의 대응은 상식이 없는 현재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며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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