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강정훈]차고 넘치는 순화되지 않은 행정용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4일 03시 00분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리빙랩 네트워크, 포스트코로나 워킹그룹, 스마트시티 통합플랫폼, 앵커기업….

경남도가 최근 행사와 문서, 홍보자료에 쓴 용어들이다. 단번에 의미를 알아채기 쉽지 않은 것들이 많다. 설령 뜻이 전달된다 하더라도 굳이 국적 불명이거나 순화되지 않은 단어를 쓸 이유는 없다.

낯선 행사인 경남 리빙랩 네트워크 발족식은 22일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있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리빙랩이 문제 해결의 교과서이자 ‘함께 만드는 완전히 새로운 경남’이라는 도정 슬로건에도 일치하는 활동”이라고 말했다. 도민들은 이를 얼마나 이해할까. 경남도 담당 부서가 ‘생활실험실 개념의 사회 혁신 방식’이라고 별도 설명을 달 정도다. 리빙랩은 2004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윌리엄 미첼 교수가 처음 제시한 개념이라고 한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리빙랩 네트워크로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위드코로나 대응, 제로페이 비대면 소비, 민관 거버넌스 활성화, 블록체인 기반, 그린뉴딜 아이디어, 온라인 마음 더(the)봄 토크콘서트…. 요즘 관가에 이런 조어(造語)들이 차고 넘친다. 김 지사가 도정(道政)을 이끌면서 빈도가 잦아진 느낌이다. 스마트 아닌 사업은 아예 저리 가라다. 플랫폼 없이는 줄도 못 선다. 뉴딜은 약방의 감초다. 시대 흐름과 산업 생태계 변화 탓이라곤 하지만 지나치다.

이해가 어렵고, 듣기에도 편하지 않다. 얼마 전 나온 ‘함양산삼항노화엑스포, 제로베이스에서 업그레이드된 로드맵으로 재탄생한다’는 보도 자료가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10여 개 신문은 이 제목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그만큼 무신경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다른 한편에선 용어 순화 노력이 진행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도로공사는 겨울철 도로면이 얇게 얼어 대형 사고를 불러오는 ‘블랙아이스’를 ‘노면 살얼음’으로 바꿨다. 세종시는 간선급행버스체계 BRT의 새 이름을 ‘바로타’로 삼을 예정이다. 경남도 사회혁신추진단도 용어 순화와 개선을 고민하고 있다. 부서 특성상 외래(외국)어 사용이 많기 때문이다. 윤난실 단장은 “퍼실리테이터(회의 촉진자), 앵커(선도) 등을 부드럽게 바꾸거나 우리말과 병기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동국 혁신정책담당 사무관을 국어기본법 10조에 따른 부서 ‘국어책임관’으로도 지정했다. 바람직한 일이다.

막말이 난무하는 정치권뿐 아니라 일반 공공기관들도 우리말을 다듬고 가꾸는 데 늘 힘을 기울여야 한다. 어디 10월 9일만이 한글날이겠는가.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
#경남도#행정용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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