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차도 출입통제 때놓쳐… 폭우-만조에 배수펌프도 먹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7월 25일 03시 00분


부산 초량동 지하차도 3명 사망
진입금지 조치 전 순식간에 침수… “차 꼼짝않는데 물 차올라” 비명
차 6대 둥둥… 창문으로 탈출-구조
6년전 동래 지하차도서도 참변… 시설 개선했다지만 비극 되풀이

“살려주세요! 차가 안 움직이는데 물이 계속 올라와요.”

23일 오후 9시 38분 부산지방경찰청 112상황실에 한 여성의 다급한 신고가 들어왔다. 3분쯤 뒤 경찰이 신고 지역인 부산 동구 초량동 제1지하차도에 도착했을 때 지하차도 안에선 “여기예요!” “도와주세요!”라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왕복 2차로인 내부는 이미 절반 넘게 물에 잠긴 상태였다. 지하차도 높이가 3.5m인데 물은 2.5m까지 올라와 있었다. 차량 6대가 물에 둥둥 떠 있었다. 지하차도 길이는 175m. 구조를 위해 접근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경찰이 일단 도로 통제에 나선 사이 곧 119구조대가 도착했다. 잠수요원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몸에 줄을 묶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 “창문 열고 나와 차 지붕으로” 필사 탈출

침수 사고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23일 저녁부터 내린 집중호우로 주변 도로로 흘러넘치던 물이 지하차도로 흘러들었다. 119에 구조된 A 씨는 “지하차도에 들어갈 때만 해도 차바퀴가 첨벙거리는 정도였지 위험하다고 느끼진 못했다. 진입금지 표시도 없어서 안심했다”고 말했다. A 씨는 “앞차들이 하나둘 멈춰서 기다리던 중 갑자기 물이 바닥에서 차오르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A 씨는 당시 차가 움직이지 않자 운전석 문을 열고 나오려 했으나 이미 물에 잠긴 상태여서 수압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았다. A 씨는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 가까스로 밖으로 나와 차 지붕에 올라간 뒤 지하차도 바깥쪽으로 헤엄쳤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이 접근해 왔을 때 A 씨 등 4명은 각자 차량의 지붕 위에 올라가 있었다. 다른 2명은 지하차도 내 구조물 위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차량이 물에 잠기면서 전기 공급이 끊겨 창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차량에 갇힌 시민이 손과 휴대전화로 창문을 내리치며 비명을 지르는 등 급박한 상황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지하차도에 갇혔던 9명 중 6명은 구조됐지만 50대, 60대 남성과 20대 여성 등 3명은 끝내 숨졌다.

○ 6년 만에 반복된 ‘인재’

이번 사고는 시설 관리에 보다 신경을 썼다면 막을 수도 있었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침수된 해당 지하차도에는 분당 20∼30t의 물을 빼내는 배수펌프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시간당 80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데다 만조로 수위가 높아져 배수펌프를 통해 바다로 물을 배출하기가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초량동은 바다와 가까워 만조에 폭우가 겹치면 큰 수해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인 경찰은 배수펌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하차도 주변 도로에 적절한 사전 통제가 이뤄졌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사고 1시간 반쯤 전인 23일 오후 8시부터 부산에서는 호우주의보가 호우경보로 바뀌어 침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출입통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지하차도 출입구에 부착된 전광판에 침수 여부를 알려주는 안내 문구도 없었다.

부산에서는 6년 전 유사한 사고가 발생해 2명이 목숨을 잃었다. 2014년 8월 시간당 최대 130mm의 폭우가 쏟아져 동래구 우장춘로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물에 잠겼다. 지하차도에 갇힌 차량 안에서 70대 할머니와 10대 손녀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사고는 지하차도 내 배전반이 물에 잠겨 배수펌프가 작동하지 않았던 게 원인으로 밝혀졌다. 부산시는 이 사고 후 관내 35개 지하차도의 전기시설을 지상으로 옮기고 배수펌프 용량도 일부 증설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초량동 제1지하차도도 이 같은 개선이 이뤄지긴 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부산#폭우 피해#지하차도 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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