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이달 말까지 전국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긴급점검을 실시하는 가운데 2학기에는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교육부가 초·중·고교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교육부는 오는 9월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26일 밝혔다. 이른바 ‘몰카’라 불리는 불법촬영을 당하거나 불법촬영한 사진, 영상 등이 유포돼 피해를 입은 적이 있는지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는 해마다 실시하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와 연계해 실시한다.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이 연간 두 차례 실시하는 조사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대상이다. 4월에는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9월에는 표본조사를 실시한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개학이 연기되고 개학 이후에도 원격수업을 병행하면서 학교 현장의 부담을 고려해 1학기 전수조사를 실시하지 않았다. 대신 오는 9월16일부터 10월14일까지 전수조사를 실시한다. 올해는 2학기에 하던 표본조사를 하지 않고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한 차례만 실시할 예정이다.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는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문항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실시한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 혹은 가해 경험이 있는지, 어떤 유형의 피해를 입었는지가 주요 조사 대상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문항이 너무 많으면 학생들이 부담을 느낄 수 있어 3개 문항 정도 추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초·중·고교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를 실시하는 것은 처음이다. 학교폭력 실태조사에서도 성추행·성폭력 피해 여부를 조사하기는 하지만 ‘언어폭력’, ‘집단따돌림’, ‘신체폭행’ 등 피해 유형의 하나로 조사할 뿐이다. 이번에는 ‘디지털 성폭력’만 따로 떼서 조사한다.
단순히 실태조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피·가해 학생에 대한 후속조치도 실시한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폭력 실태조사는 현황 파악은 익명으로 하지만 마지막에 ‘신고’ 항목이 있다”며 “개인정보 동의를 거쳐 신고가 접수되면 사안 조사를 해서 처리를 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실태조사는 지난 4월24일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의 교육 분야 후속 조치 가운데 하나다. 정부는 성착취 동영상을 제작해 불법 유포한 ‘n번방’ 사건 등이 논란이 되자 관계부처 합동으로 대책을 내놓았다. ‘초·중·고교 학생 대상 디지털 성폭력 실태조사와 학생 인식에 대한 심층연구를 바탕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한다’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전수조사와는 별개로 ‘디지털 성폭력 예방을 위한 청소년 인식·문화 개선방안 연구’도 8월 초부터 4개월간 실시한다.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청소년 문화와 인식, 피·가해 발생 원인과 유형, 유입경로, 대응 방식 등을 심층 분석한다. 청소년, 학부모, 교원, 청소년 상담사를 대상으로 심층면접 중심의 연구도 실시한다.
앞서 교육부가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의뢰해 실시한 ‘중·고등학교 양성평등 의식 및 성희롱 성폭력 실태 연구’에 따르면 학생 14만4472명 중 3.0%가 불법촬영이나 유포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10월 조사는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첫 대규모 성희롱·성폭력 실태조사이긴 했지만 전체 중고생 280만명 중 약 5%(14만명)만 참여했다.
송경원 정의당 교육 분야 정책위원은 “학교는 안전해야 하는데 불법촬영과 ‘n번방’ 사건 등 디지털 성폭력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며 “실태조사에서는 학생 아닌 가해자도 파악해야 하며 조사에 그치지 않고 엄정한 후속조치로 이어져 성희롱, 성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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