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법 "중대한 사건 직권조사 가능"
전문가 "대권후보 박원순, 중대성 크다"
"직권조사, 힘 실리고 범위도 폭 넓어"
여성계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비서 성추행 등 의혹과 관련해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하지 않고 ‘직권조사’를 요구했다. 전문가들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필요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29일 여성계에 따르면 한국여성의전화 등은 전날 인권위에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국가인권위원회 직권조사 발동 요청서’를 냈다. 이들은 인권위에 모두 8개 분야에 대한 조사를 요구한 것으로 파악된다.
전문가들은 사안이 중대한 만큼 인권위의 직권조사가 가능하며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은 “인권위는 진정이 없는 경우에도 인권침해나 차별행위가 있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근거가 있고 그 내용이 중대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직권으로 조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성계에서 진정이 아닌 직권조사를 요구한 배경에는 이처럼 박 전 시장 사건의 ‘중대성’ 인정 효과도 의식했고, 이에 대한 기대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권위 상임위원을 지낸 정상환 변호사는 “박 시장 사건의 경우 사안이 중대하다는 경우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며 “인권위 직권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석희 한국여성변호사협회 회장은 “대권후보라고 할 수 있는 박 전 시장이 야기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안의 중대성이 매우 크다”며 “이 사건으로 여당의 지지율이 낮아질 정도로 사회적 반향이 중대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직권조사를 통해 ‘폭넓고, 힘 있는’ 조사가 가능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변호사는 “진정이 아니라 직권조사를 하면 인권위의 의지가 시작부터 반영되기 때문에 힘이 실리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진정의 경우에는 (조사 범위가) 진정인이 ‘이런 사항을 조사해달라’고 한 요청에 제한되지만, 직권조사의 경우 새로운 것이 나오면 바로 조사할 수 있다. 재량의 여지가 커진다”고 했다.
윤 회장도 “성희롱, 성폭력 매뉴얼의 문제점, 제도 개선 필요성 등이 권고될 것으로 보인다”며 “단순히 서울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권고할 수 있는 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도 “지자체, 대기업 등 지도자의 영향력이 강한 조직 속에서 어떻게 재발을 방지하고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시스템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가 있겠다”고 했다.
이번 조사로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도 규명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 변호사는 “인권위가 2차 피해 등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으로 예상된다”며 “2차 피해는 1차 피해를 전제하는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관련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도 “인권위도 사망한 박 전 시장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조사를 진행하기는 어렵겠지만, 2차 피해, 서울시의 추행 방조 의혹 규명 과정에서 1차 가해에 대한 조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수사기관의 경우 기소를 통한 법적 제재에 중점을 두지만 인권위는 제도 개선을 권고할 수 있다는 점도 인권위 직권조사 요청의 배경으로 거론된다.
윤 회장은 “하급직 노동자들이 성 역할에 고정되지 않고 노동자들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인권위가 노력해주길 기대한다”며 “이런 사건에 대해서 인권위가 조사하지 않으면 존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성추행 의혹이 제기됐을 때 서울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만큼 인권위를 통해서 확인하려는 시도라는 분석도 나온다.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변호사는 전날 기자들과 만나 ‘인권위 조사로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 진상규명 가능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가능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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