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선박에 대한 구멍난 전수검사로 시작된 페트로원호의 선원 확진자와 지역내 감염 환자가 연일 늘어나는 가운데 선박에 남아있는 선원 격리도 사실상 방치되면서 추가 확진자가 또다시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검역당국은 선원 확진자가 발생하면 ‘음성’ 판정을 받은 나머지 선원들을 대상으로 선내 격리조치를 내리고 방역 준수사항에 대해 통보하지만 실질적으로 관리는 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지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방역당국에서는 페트로원호에서 이미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밀폐된 공간이 많은 선내 특성을 감안했을 때 추가 감염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남은 선원들을 격리시설로 분리할 것을 사전에 요청했지만 지난 닷새동안 아무런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검역당국은 추가 확진자 12명이 발생한 29일에서야 페트로원호 선원들이 실질적으로 관리감독하는 주체도 없이 선내에서 생활하다보니 동료끼리 섞이는 일이 빈번하고 감염 위험도 큰 것으로 판단하고 이들을 임시생활시설에 수용하도록 부산시에 요청했다.
하지만 최근 부산항을 통해 선박에서 선원 교대를 목적으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고 임시생활시설 수용인원 상당 수를 차지 하고 있기 때문에 선원들을 위한 임시생활시설을 추가로 확보해야하는 상황이다.
시는 페트로원호 전체 선원 94명 가운데 확진자 44명을 제외한 나머지 50명을 격리시설로 옮기기 위해 제3의 임시생활시설을 알아보고 있다.
페트로원호의 가장 큰 문제는 지난 20일부터 실시된 전수 진단검사 영역에서 빠져 있었다는 것이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지난달 22일부터 러시아 선원 확진자가 한 달동안 지속적으로 발생하자 국내 항만 근무자와 접촉이 빈번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양어선과 냉장·냉동 화물선, 선체수리를 목적으로 입항하는 선박에 대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같은 지침은 지난 20일부터 시작됐지만 기존에 부산항에 들어와 있던 러시아 선박은 전수진단 검사 범위에서 제외되고 새로 입항하는 선박에 대해서만 적용됐다.
검역당국이 전수조사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위험요소들을 누락시킨 채 반쪽자리 전수조사를 진행한 것이다.
페트로원호는 지난 23일 러시아 선박에 승선해 용접과 파이프 교체작업 등을 진행한 국내 선박 수리업체 직원 1명이 ‘양성’ 판정을 받으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다음날인 24일에는 페트로원호 선원 확진자 32명이 발생했고 닷새 뒤인 29일에는 1차 코로나19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고 선내에서 격리중이던 나머지 선원 62명 가운데 12명이 추가 확진됐다. 지역 내 감염도 엿새만에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이로써 페트로원호발 확진자는 모두 55명으로 증가했다.
이처럼 전수검사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던 페트로원호 선박에서는 선원 확진자가 계속해서 나오고 이들과 접촉한 내국인 가운데 2차 감염도 증가하고 있다. 또 선내 격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추가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을 치료하고 격리하기 위한 비용도 함께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검역소 관계자는 “선내 격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도 이전에 확진자 32명이 나온 선박인 점을 고려하면 기존에 감염됐던 사람이 1차 검사에서 검출이 안됐을 수도 있다”며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내 격리 문제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우리가 올라갔을 때는 모두 격리돼 있었고 검역관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격리가 이뤄졌는지 알 수 없다”며 “선박을 이탈하면 알 수 있지만 선박 안에서 이뤄진 선원들의 이동동선은 알 수 없다”고 했다.
손현진 부산대학교 감염예방의학과 교수는 “페트로원호에서 32명이 집단감염된 이후 추가 확진자가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동안 선박 안에 방치해둔 것”이라며 “밀폐된 공간인데다 24시간 마스크를 쓰고 있기 불가능한 상황, 선원들끼리 밀집돼 있는 점 등 코로나19 감염이 확산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방치됐던 선원 50명을 모두 빼내야 한다”며 “그대로 놔두면 모두 감염되서 나올 것이고 일본 크루즈 선박에서 감염 환자가 속출했던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선내 격리라고 표현하지만 사실상 하선하지 못하도록 선박 안에 가둬놓기만 한 것”이라며 “앞으로 선원 확진자가 나올 경우 선박 내 공간, 남은 선원들의 인원, 1인실 격리가 가능한 상황인지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신속하게 임시생활시설로 격리하고 중앙정부 차원의 생활치료센터, 임시생활시설을 추가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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