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개혁위)에서 검찰총장의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은 강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권고안을 낸 것과 관련해 검찰 내부의 비판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남수·박철완 검사가 전날(29일) 비판글을 올린 이후 30일에는 4년 차 검사가 “지금까지 외쳐온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실상은 ‘검찰의 법무부화’를 목표로 하고 있었던 것인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홍영기 경주지청 검사(35·변호사시험 6회)는 이날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 ‘이프로스’ 게시판에 “이번 권고안의 (법무부 장관의) 구체적 지휘 권한 창설은 검찰의 민주적 정당성, 민주적 통제 강화에 대한 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검사는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을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 등을 언급하며 “현행 검찰청법에는 검사의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다수 마련돼 있는데, 이번 권고안이 시행되면 그러한 보호 장치를 없애거나 흔들어 검사 직무의 정치적 중립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권고안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이 사실상 개별 평검사들에게 구체적 수사지휘권을 갖게 된다”며 “(개혁위가 앞세운)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 보장’이라는 제목 하에 ‘정무직’인 법무부 장관이 개별 평검사들에게 사실상 구체적 지휘권을 갖는 안을 만드는 것은 개정 목표에 반한다”고 꼬집었다.
홍 검사는 “이 일을 시작한 이후 첫 장관님 때부터 현재까지 법무부의 목표는 ‘법무부의 탈검찰화’였고 많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며 “검찰과 법무부의 관계에서 처음부터 실로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법무부의 탈검찰화’가 아니라 검찰의 정치적 독립, ‘검찰의 탈법무부화’였음에도 깨닫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며 글을 맺었다.
검찰 내부 통신망은 전날부터 권고안을 비판하는 일선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다. 홍 검사에 앞서 전날 올라온 김남수 서울중앙지검 검사(43·사법연수원 38기)의 게시글에는 그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내용의 댓글이 이날 오후까지 200여개 달렸다. 김 검사는 일선에서 처음으로 공개 비판 게시글을 올렸다.
대부분 검사는 “권고안은 오히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며 목소릴 높였다. 한 검사는 “권고안은 정치에서의 검찰 수사 독립에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정치에 종속되도록 하는 방안이다. 검찰총장의 임기를 보장하고 검찰을 법무부의 외청으로 둔 취지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검사는 “임기가 보장되는 검찰총장이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정무직인 법무부장관에게 구체적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라는 사정의 칼날을 쥐여주는 것은 퇴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한편에선 “권력자가 고검장 1명만 섭외하면 손쉽게 원하는 결론에 이를 수 있겠단 고약한 상상이 든다”고 비판했다.
개혁위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한 검사는 “검찰 개혁 힘껏 하라. 그런데 전문가와 학계 등 의견을 최소한 듣는 척은 해야 하지 않느냐. 실체도 잘 모르는 위원회가 말하면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된 것인가. 일관성, 가치관이 상실된 맹목적 산술적 민주주의의 다른 이름은 폭력”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검사는 개혁위가 권고의 근거로 다수 해외 사례를 언급한 것을 두고 “나라마다 검찰 제도가 상이하고 검사 독립을 보장하기 위한 장치도 다양한데, 입맛에 맞는 부분만 가져다 붙이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이어 “‘살아있는 권력에 엄정하게 수사하랬더니 감히 우리 편을 건드린 대가’라고 솔직하게 말하라. 본심을 감추고 개혁이란 이름으로 포장한다”며 거센 비판을 내놨다.
내달 인사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도 김후곤 서울북부지검장과 송경호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박재억 대구지검 포항지청장 등도 실명으로 댓글을 올렸다.
대검 대변인을 지낸 김 지검장은 “하루하루 사건 처리로 고생하는 후배들이 밤새 고민하며 이런 글까지 써야 하는 현실이 부끄럽고 선배로서 죄송할 따름”이라며 “법무부도 일선 검사들의 충정 어린 목소리를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으리라 믿는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및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을 지휘했던 송 지청장은 ”동의하고 깊이 공감한다. 감사하다“고 밝혔다. 조 전 장관 당시와 추 장관 취임 초 법무부 대변인을 지낸 박 지청장도 동감한다는 뜻을 밝히며 ”우리 검찰 구성원 대부분의 마음의 중심이 국민을 향해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썼다.
박철완 부산고검 검사(48·사법연수원 27기)의 글에도 지지댓글이 이어졌다. 한 검사는 ‘시스템에 갇힌 몽상가는 그 일에 몰두해버린 채 계획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고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며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든다’는 책 구절을 인용하며 권고안 내용을 비판했다.
박 검사는 전날 김 검사에 이어 이프로스에 글을 올리고 ”차제에 보다 근본적 해결책으로 검찰총장이나 대검을 아예 없애거나 현 검찰의 기능 원리인 ‘위계적 조직과 질서를 바탕으로 통일성 추구’ 자체를 금지하는 것(예컨대 결재, 보고 제도 폐지)도 심도 있게 검토해 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총장이나 대검을 없애거나, 위계적 조직과 질서를 바탕으로 통일성을 추구하는 자체를 금지하면 현 검찰체제가 갖는 문제는 일거에 소멸될 것 같다. 물론, 새로운 형태의 문제가 훨씬 많이 생길 것으로 예상되지만, 문제가 심각해지면 제도를 다시 바꾸면 되니까“라고 덧붙였다. ‘차라리 검찰 조직을 폐지하라’며 개혁위 권고안을 비꼰 것이다.
박 검사는 ”윤석열 총장 스타일의 검찰총장 등장을 막고 또 통제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에 대한 위원회의 치열한 문제의식과 해법 모색을 볼 수 있었다“라며 ”인사권 예산권이 없는 검찰총장을 제왕적 검찰총장으로 부를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고도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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