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전국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며 예고했던 파업을 진행했다. 일반 의사가 아니라 수련 중인 전공의들이 파업을 벌인 것은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원격의료 및 영리병원 추진 반대 등 최근 20여 년 동안 단 두 차례뿐. 응급실, 분만실을 포함한 필수의료 인력까지 모두 참여한 전면파업은 2000년 이후 20년 만에 처음이다. 14일에는 국내 최대 의사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협) 파업도 예정돼 있다. 의협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안을 계속 추진할 경우 다음 달 2차 총파업까지 강행할 계획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확대안의 후폭풍이 거세다.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수를 더 확충해야 한다는 정부에 의료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다가올 가을 및 겨울에 우려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2차 유행을 앞두고 의료계의 협조가 절실한 정부는 절충점을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럼에도 확대 방침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 정부 “의사 4000명 늘려 의료 불균형 해소”
지난달 23일 보건복지부는 현재 3058명인 의대 정원을 올해 고교 2학년이 입시를 치르는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3458명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의대 정원이 늘어나는 것은 2006년 이후 16년 만이다. 매년 400명씩 10년간 뽑으니 2031학년도까지 의사가 총 4000명 더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400명 중 △300명은 지역에서 최소 10년간 의무 복무해야 하는 지역의사 △50명은 감염내과, 소아외과 등 특수전문 분야 의사 △나머지 50명은 바이오·메디컬 분야 의과학자로 뽑을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의사 수가 전반적으로 부족하고, 일부 필수 분야 인력은 더 부족하다는 게 정부가 정원 확대를 추진하는 이유다. 실제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 수는 2017년 기준 2.3명(한의사 포함)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4명에 크게 못 미친다. 나라별로 봐도 독일(4.3명), 스웨덴(4.1명)은 물론이고 의사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영국(2.8명)보다도 적다.
더 큰 문제는 지역 간 불균형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서울은 인구 1000명당 활동의사가 3.1명, 강원은 1.8명, 경북은 1.4명이다. 지역 간 격차가 2배가 넘는다. 전국 의사의 절반 이상이 면적으로는 전체 국토의 10%에 불과한 서울 경기 등 수도권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6일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응급질환이나 뇌졸중 같은 뇌질환 사망률이 강원 영월군의 경우 서울 동남권보다 2배 이상 높다”며 “어느 지역에 살든 우수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인기 분야 인력 부족도 심각하다. 지난해 전문의 약 10만 명 가운데 감염내과 전문의는 277명, 소아외과 전문의는 48명이었다. 임상이 아닌 다른 필수 분야나 의과학 분야에는 의사가 더 없다. 올 7월 질병관리본부가 밝힌 본부 내 의사 역학조사관은 5명. 의약품, 의료기기 산업 등 의료산업에 종사하는 의사 과학자는 2017년 전국을 통틀어 67명이었다.
이에 정부는 2022년부터 뽑는 4000명을 꼭 필요한 지역과 분야의 인재로 키울 계획이다. 3000명은 ‘지역의사선발전형’으로 뽑는다. 이들은 의대 재학기간 장학금을 받는 대신에 의사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에서 필수의료(외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등) 의사로 근무해야 한다. 만약 이를 어기고 다른 지역이나 다른 분야 병원에서 근무할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당하거나 장학금을 반납해야 할 수도 있다.
특수 전문 분야, 의과학 분야 1000명은 대학에 관련 인재 양성을 조건으로 정원을 배정할 계획이다. 특히 역학조사관 등 공공보건의료 인력의 경우 2024년까지 국립공공의료대학원을 설립해 이곳에서 집중 양성할 예정이라고 정부는 밝혔다.
○ 의료계 “기피 지역과 분야의 처우 개선 먼저”
의료계도 지역과 분야 간 격차가 크다는 정부의 문제의식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그 해법이 의사 증원만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대한의사협회 김대하 홍보이사는 “이탈리아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4.0명이지만 의료의 질 저하 문제가 심각하고, 이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참담한 피해로 나타났다”며 “OECD 통계에 나온 의료지표를 종합적으로 보고 해석해야지, 의사 수만 보고 증원을 논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실제 2017년 OECD 통계 가운데 의료접근성을 반영하는 국토 면적당 활동의사 수는 우리나라가 10km²당 12.0명으로 OECD 회원국 중 세 번째로 많다. 국민 1인당 의사 상담건수도 16.6회로 OECD 평균인 6.8회의 2배 이상이다.
의료계는 낮은 수가, 왜곡된 전달체계 같은 근본적인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놔두고 의사만 증원하면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피 지역이나 기피 과목이 생기는 이유는 높은 위험 대비 낮은 보상 때문인데, 투입 인력을 늘려봐야 해당 지역이나 분야에서 오래 버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개인의원을 운영하는 한 지역 출신 의사는 “인구도 적고 수익도 적은 지역에서 쭉 일하려는 의사가 몇이나 되겠느냐”며 “지역의사로 선발된 인력도 의무복무 10년을 마치면 결국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지역 쏠림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지역가산수가 등 지역의료체계 개선 필요
정부도 의료계의 우려를 모르는 게 아니다. 정부는 의사 증원과 함께 지역가산수가 도입, 지역 우수병원 육성 등 지역의료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중장기 대책을 함께 추진할 계획이다. 김헌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6일 브리핑에서 “10년 뒤 얼마나 많은 의사가 지역에 남아 일하도록 할 수 있느냐에 이번 정책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가급적 해당 지역에서 학생을 뽑고 지자체와 함께 지원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부정적이다. 김 이사는 “근무지역과 전공을 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의료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하고, 그 결과가 사회의 공익으로도 연결될 수 있도록 정교한 제도설계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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