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랑구 중화동에 사는 장주형 씨(32)의 유일한 취미는 미술 전시 관람이다. 하지만 유명 전시가 자주 열리는 중구 서울시립미술관과 서초구 한가람미술관까지 가려면 집에서 왕복 2시간은 걸린다. 이 때문에 장 씨는 미술관에 한 달에 한 번 가는 것도 쉽지 않다. 장 씨는 “미술관은 대부분 강남이나 도심에 있어, 전시를 보려면 동네를 벗어나야 해서 심리적 장벽이 크다”고 했다. 장 씨가 사는 중랑구엔 미술관·박물관이 한 곳도 없다. 반면 그가 자주 찾는다는 미술관이 위치한 중구엔 18곳, 서초구엔 10곳이나 된다.
서울 내 박물관·미술관의 지역 편중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문세권’(문화시설 밀집 지역)은 집값도 비싸 지역·소득에 따라 시민들의 문화향유권 격차가 더욱 심화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가 서울시로부터 자료를 받아 25개 자치구 현황을 분석한 결과, 종로구에만 54곳의 박물관·미술관이 몰려 있고 △중구(18곳) △용산구(12곳) △강남구(11곳) △서초구(10곳) △송파구(7곳) △성북구(7곳) 순으로 많았다.
이 중 강남·서초·송파·용산구는 올 5월 기준 아파트 실거래가 중위가격이 높은 4개 구다. 반면 박물관·미술관이 아예 없는 곳도 금천·양천·중랑구 등 3곳이나 됐다. 강동·도봉구는 2곳, 구로·동작구는 1곳이었다. 아파트 실거래가 중위가격이 낮은 도봉·중랑·노원·금천·구로구 등 5개 구엔 대학 내 시설을 제외한 순수 박물관·미술관이 아예 없거나 3곳 이하였다.
“주택 가격과 문화 인프라 수가 정비례한다”는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가 서울에도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이 효과는 스페인의 중소도시 빌바오의 주택 가격이 1997년 구겐하임 미술관 개관 후 급등했던 현상에서 따왔다. 문화 인프라의 지역 편중 현상은 주택 가격과 소득 격차로 이어진다는 게 핵심이다. 통상 주택 가격이 높은 지역에 고소득자가 많이 살고, 고소득자의 문화 향유 경험이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물관·미술관의 지역 편중 현상은 문화 향유 격차를 유발할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18년 조사에도 월평균 소득이 100만 원 미만인 가구의 문화예술 관람률은 42.5%로 월평균 600만 원 이상 가구(91.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격차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취약 지역에 박물관·미술관을 더 지어야 한다는 게 서울시 입장이다. 같은 조사에서 시민들이 문화예술 행사에서 우선 보완해야 하는 요인으로 ‘지역적 접근성’(13.3%)을 3위로 꼽고 있는 만큼 취약 지역에 문화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이를 위해 2015년부터 ‘박물관·미술관 도시, 서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2023년까지 박물관과 미술관 5개를 도봉·금천·노원구 등에 문을 열 예정이지만 이미 벌어진 격차를 줄이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앞으로 개관할 시설뿐 아니라 동북·서남권 등 지역에 박물관·미술관을 더욱 확충해 격차를 최소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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