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은 이상기후의 연속이었다. 먼저 6월은 역대 가장 더운 6월이었다. 장마는 54일이나 이어져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7월은 사상 처음으로 6월보다 기온이 낮았다. 이런 현상들을 겪으며 기후변화를 실감했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
기후변화가 진행될수록 폭염과 혹한, 가뭄, 폭우 등은 더 잦아진다. 그중에서 기온 상승은 가장 뚜렷한 기후변화 현상이다.
○ 2030년 폭염 위험 ‘높음’ 지역 배로 늘어
환경부는 지난해 전국 기초지방자치단체 229곳의 10년 뒤 폭염위험도를 예측해봤다. 인구 고령화 추이와 도시화 비율, 평균기온 상승 등을 고려해 폭염위험도를 ‘매우 낮음―낮음―보통―높음―매우 높음’의 5단계로 나눴다. 그중 ‘높음’과 ‘매우 높음’에 포함되는 지자체는 2001∼2010년 69곳에서 2021∼2030년 126곳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실가스 저감 정책이 상당히 실현될 것을 가정한 시나리오인데도 이렇다. ‘높음’ 단계 이상으로 가면 온열질환 발생 비율, 폭염으로 인한 농축수산물 피해, 폭염으로 선로가 휘는 등 도시 기반 시설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한반도의 평균 기온은 2017년 기준으로 1912년에 비해 이미 1.8도나 상승했다. 국제사회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사수하기로 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은 1.5도 이내. 그러나 우리나라의 폭염 전망은 암울하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 2020’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을 이대로 계속할 경우엔 21세기 말 한반도 평균 기온은 4.7도 올라간다. 낮 최고기온이 33도를 넘기는 폭염은 현재(연평균 10.3일)보다 3배 이상으로(35.5일)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화석연료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식의 기후변화 대응과 더불어 뜨거워지는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후변화 적응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다.
○ 폭염 대응 기술을 찾아라
환경부는 지난해 폭염 대응 시설들의 온도 저감 효과에 대한 분석을 시작해 최근 마무리했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폭염 대응 시설들의 수요가 느는 만큼 해당 기술들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 연구는 향후 폭염 대응 시설 설치의 효율성을 높이고, 운영 매뉴얼을 체계화하는 데 활용될 예정이다.
광주시는 동구 금남로 4차선 차로에 ‘쿨링&클린로드’를 설치해 5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도로 중앙 반사판 아래 깔린 노즐에서 하루 3번 물이 뿜어져 나오면서 아스팔트를 적셔 열을 빼앗는 원리다.
아스팔트를 적시면 도심 열섬 현상이 완화된다. 6월 16일, 기상청 관측소에서 측정한 광주 최고 온도는 29.9도였지만 금남로의 온도는 33도, 아스팔트 표면 온도는 54도였다. 그러나 ‘쿨링&클린로드’가 작동하자 아스팔트 표면 온도는 5분 만에 36∼37도로 떨어졌다. 버스정류장에 서 있던 한 시민은 “슬리퍼를 신은 발이 따끔거릴 정도로 바닥이 뜨거웠는데, 한결 시원해졌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환경부가 검증한 폭염 대응 기술들은 이처럼 물을 이용해 온도를 떨어뜨리는 시설과 빛을 반사·차단하는 시설로 나뉜다. 기존 건물과 도로에 적용할 수 있어 리모델링이나 재개발보다 적은 비용으로 도심 기온을 낮추고 에너지 저감 효과도 볼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이 동시에 이뤄지는 셈이다.
검증 결과, 온도가 가장 많이 떨어지는 기술은 쿨링&클린로드였다. 검증 실험에선 표면온도를 최대 16.5도 낮췄다. 대기 중에 물을 뿌려 시원한 느낌을 주는 쿨링포그는 주변 공기 온도를 최대 7도까지 낮췄다. 빛을 반사하는 도료는 옥상에 바르면 ‘쿨루프’, 도로에 바르면 ‘쿨페이브먼트’로 나뉜다. 쿨루프는 건물 냉방기 가동률을 낮춰 에너지를 m²당 8.7Wh 절감하는 효과가 있고, 쿨페이브먼트는 아스팔트 온도를 12.3도까지 낮췄다. 건물의 콘크리트 외벽을 식물로 덮는 벽면 녹화는 건물 내부로 들어오는 태양열을 100분의 1로 줄여줬다.
폭염 대응 시설의 가장 큰 강점은 그 효과를 시민 모두가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도로를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폭염에 노출되는 시민, 키가 작아 지열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 어린이, 더위 대응력이 떨어지는 노인 등 폭염 취약계층이 큰 도움을 받는다.
임영신 국가기후변화적응센터 박사는 “유동인구가 많아 열섬현상이 강한 도심은 쿨링&클린로드, 전통시장은 쿨링포그, 에어컨 요금이 부담스러운 건물엔 쿨루프와 벽면 녹화 등을 도입하면 온도 저감은 물론이고 쾌적함도 느낄 수 있어 삶의 질이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대중교통이 많은 지역은 버스정류장 녹화작업을, 댐이 있는 도시는 댐 물을 활용해 도심 곳곳에 물길을 내 열섬현상을 줄이는 식으로 지역에 따라 맞춤형 변형도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향후에는 도시 계획을 할 때부터 기후변화 전망을 염두에 두고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심 내 녹지 비율을 높이고, 바람길을 고려한 건축 설계가 의무화되도록 하는 방식 등이다. 한국기후변화학회장인 이동근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 교수는 “극한 기후가 찾아올 때도 어떻게 안전하게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단순히 높고 큰 건물만 우선해 지을 것이 아니라 폭염과 혹한, 태풍과 해일 등의 피해를 견딜 수 있는 도시의 탄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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