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상하이자오퉁대학이 15일 발표한 ‘세계대학 학술 순위’에서 국내 톱을 차지한 서울대는 세계 101∼150위권이었다. 서울대에 이어 서울 소재 사립 5개교가 201∼300위권이었고 지역국립대학으로 경북대와 부산대가 301∼500위권으로 국내 9, 10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국가경쟁력에 비해 대학경쟁력은 터무니없이 뒤처진다. 대학혁신을 부르짖으면서도 교육 경쟁력을 높일 구체적인 대안, 특히 지역교육 불균형에 대한 해법에 대해선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국이 장기적으로 망한다면 교육 때문일 것이고 부동산보다 더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19세기 한중일 동북아 3국 운명의 갈림길은 교육혁명이었다
19세기 서구 열강의 침입은 동아시아의 지형과 국가의 운명을 바꿔 놓았다. 대한제국은 식민지로, 중국은 반(半)식민지로 떨어진 데 비해 일본은 유일하게 근대화에 성공했다. 정보력과 위기 인식, 그로 인한 혁신 변화 수용이 국가의 운명을 바꾼 것이다.(‘동아시아 근대이행의 세 갈래’, 백영서 외 저·2009년) 1853년 미국 페리제독이 이끈 증기 군함 흑선(쿠로후네)이 도쿄만에 입항한 이후 이듬해 개항을 시작으로 에도막부는 서양문명을 발빠르게 도입하면서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했다. 스스로 통치권과 토지를 포기하고 반납하는 대정봉환(大政奉還)과 판적봉환(版籍奉還). 세계 혁명사에 유례가 없는 자폭, ‘사무라이에 의한 사무라이의 자살’로 요약되는 메이지유신의 핵심은 다름 아닌 교육혁명이었다. 일본 만엔 지폐의 인물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1858년 도쿄에 서양학교인 난학숙(蘭學塾)을 열어 학문 연구와 계몽사상 교육으로 개화 청년을 양성하고 메이지 유신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1868년 이 학교는 일본 근대 대학의 효시인 게이오대(기주쿠)로 개명된다. 유신정부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의 공리주의와 자유주의 의무 교육제도를 도입했다. 1877년 국립 도쿄대를 시작으로 1882년 사립인 와세다대와 그 이후 제국대로 불리는 일본의 명문 7개 대학이 교토, 동북, 규슈, 홋카이도 등 전국에 문을 열었다. 이들 대학에서 지난해까지 노벨과학상 수상자가 25명이 나왔다. 한국은 0명. 25대 0을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나.
대학의 위치가 대학의 서열을 결정하는 대한민국이 ‘헬조선’ 초래해
2019년 중앙일보 4년제 종합대학평가(KAIST, 포스텍 등 이공계 특성화대학은 제외) 결과에서 20위 안에 수도권대학이 18개이고 지역대학으로는 부산대가 18위, 전북대가 20위를 차지했다. 일본은 어떤가. 일본 노벨과학상 수상자 출신교 1위는 5명을 수상한 도쿄대가 아니고 도쿄에서 멀리 떨어진 교토대(7명 수상)다. 3위는 3명의 수상자를 낸 나고야대다. 그 뒤를 이어 동북대, 홋카이도대 등 전국에 골고루 흩어져 있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서울대, 부산대, 경북대, 전남대 등 도별 대표 거점 국립대를 설립하면서 이들 대학이 지역인재 육성과 지역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정책을 폈다. 1960년대 이후 동남권 임해공업벨트에 조선, 기계,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신발, 전자 등 첨단산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시작되었다. 이 지역에 위치한 부산대와 경북대는 서울대 다음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받아서 이들 기업에 많은 인재를 공급해왔다. 이 두 대학의 1970, 80년대 학번 졸업생들은 포항제철, 현대중공업, 현대자동차,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LG전자 등을 세계 1등 기업으로 만든 주역이었다. 2019년 말 현재 이들 기업 등기임원 1, 2위를 부산대 경북대가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지역대학들이 지역산업과 인재를 육성하면서 전국이 골고루 발전하는 건강한 국가시스템은 1990년대 수도권집중화가 되면서 붕괴되기 시작했다. 부산대를 비롯한 지역대학의 입학 성적이 수도권 소재 대학 다음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의 4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영호남 젊은이들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스카이(SKY)대학은 강남학생들의 안마당이 됐다. 강남의 땅값·집값이 오르지 않을 수 없다. 교육비용의 증가로 가진 자만 대학을 갈 수 있는 사회. 교육의 양극화는 결혼·출산 기피라는 ‘헬조선’을 만들었다. 한국이 정말 교육 때문에 망할 수 있겠다는 것이 기우는 아닌 듯하다.
서울 명문대학, 지역대학으로 이전하는 특별법을 제정하자
독일제국을 완성한 비스마르크 재상은 전국에 골고루 공과대학을 설립, 육성해 오늘날의 기술강국 독일의 초석을 깔았다. 아헨공대, 뮌헨공대, 슈트트가르트공대, 드레스덴공대, 베를린공대 등 독일의 기술연구를 선도하는 9개의 공과대학이다. 비교적 짧은 대학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들 대학에서 독일 노벨과학상의 대부분이 배출됐다. 막강한 연구역량을 자랑하는 독일의 4대 연구기관인 막스플랑크(MPI), 프라운호퍼(FhG), 헬름홀츠(HGF), 라이프니츠(WGL) 산하 135개의 연구소가 대학 내 혹은 인근에 분포되어 기업과 클러스터를 구성해 첨단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히든챔피언 기업이 전국 지역에 골고루 분포돼 있는 이유이다. 베를린공대가 있는 수도 베를린은 인구 350만여 명으로 독일 내 도시 경쟁력에서 20위 권 밖에 있는 지역 도시에 불과하다.
대학은 교육과 기술 연구개발이라는 본연의 목적 외에 젊은이를 모아서 일자리와 문화를 창출하고 도시를 젊게 하는 강력한 시스템이다. 국토 균형발전을 이루는 최고의 수단이다. 전국 대학의 40%, 그것도 상위 우수대학 18개가 한 도시에 몰려 있는 나라는 세계 선진국 어디에도 없다. 인구의 과반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지역이 소멸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모두가 잘살고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없다. 18일 영호남 여야 의원 20여 명이 ‘지방 소멸 위기 지역 지원 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회 공청회를 열었다.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고심의 자리였다. 논의되는 특별법에 ‘서울 소재 명문 대학 지역 이전’을 추가하지 않고는 ‘헬조선’을 피할 수 없다. 교육균형발전이 진정한 국가 균형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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