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교육 1시간 영상 본 게 전부… 커브길 진입전 운전대 ‘휙’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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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운전, 멈추고 늦추자] <10> 초보들 충분한 교육없이 운전대


충북 청주에 사는 송모 씨(30·여)는 스스로 주변에 ‘장롱 면허’라 얘기하고 다닌다. 지난해 5월 운전면허를 딴 뒤 한껏 기대에 부풀었던 것도 잠시. 운전대를 잡고 아찔한 경험을 몇 차례 하고선 이제 운전석에 앉는 것을 포기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가장 큰 계기는 지난해 9월경. 주차장에서 후진하다 뒤쪽 차를 확 긁어버렸다. 송 씨는 당황한 나머지 한동안 정신이 나가버렸다. 지나가던 차들이 마구 경적을 울리자 두려움까지 치솟아 꼼짝도 하질 못했다. 송 씨는 “면허증 딸 때만 해도 설렘에 부풀었지만 실전은 완전히 달랐다”며 씁쓸해했다.

어떤 일이건 처음 겪는 초보는 있기 마련. 하지만 ‘운전 초보’는 유독 어렵고 힘든 길이다. 물론 국내 교통문화가 초보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도 있다. 하지만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운전대를 잡은 이들은 ‘도로 위의 시한폭탄’이란 오명을 쓰는 경우가 잦다. 전문가들은 초보운전자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도로교통의 선진화에 중요한 관건이라고 입을 모은다.

○ “내 차와 친숙해져야 사고 위험 줄어”

직장인 장모 씨(28·여)는 지난달 22일 면허증을 발급받자마자 사설 학원에 등록했다. 본인도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지인들이 꼭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장 씨는 “처음에는 면허를 빨리 따고 싶은 마음에 학원 강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며 “실제로 운전대를 잡기엔 섣불리 차를 몰다가 큰 사고를 낼 것 같았다”고 했다. 그는 개인강사와 함께 교차로와 골목길, 주차장 등을 돌아본 뒤에야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고 했다.

운전면허가 실제 운전 능력을 담보해주지 못하다 보니, 면허를 딴 뒤에도 운전 강습을 받는 경우가 대다수다. 한 교통안전 전문가는 “운전면허가 단순히 차를 움직이는 기술을 가르칠 게 아니라 도로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등 실제적인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주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서 체험한 운전자의 공간 감각을 기르는 훈련. 한국교통안전공단 제공
한국교통안전공단 상주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서 체험한 운전자의 공간 감각을 기르는 훈련. 한국교통안전공단 제공
뭣보다 초보운전자는 차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게 급선무다. 동아일보는 10일 경북 상주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상주교통안전체험교육센터에서 공간 감각을 기르는 운전 훈련에 참가해봤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틈을 통해 49m²(약 14평) 남짓한 정사각형 공간 안에 들어갔다가 테두리 고깔을 건드리지 않고 들어간 곳으로 다시 나오는 훈련이다.

차에서 본 바깥 공간은 차량이 바퀴를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고깔을 칠 만큼 작게 느껴졌다. 운전대를 잡은 하성수 교통안전공단 상주교육센터 교수는 차량 양쪽의 사이드미러를 번갈아보며 빈 공간을 재빠르게 파악했다. 하 교수는 “차량의 폭과 길이를 잘 파악하고 운전대 조작에 따른 차량의 움직임 정도를 알아야 공간을 빠져나올 수 있다”며 “안전운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반복 연습을 통해 내 차에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선 면허를 발급받기 전 운전대와 익숙해지기 쉽지 않은 편이라 진단했다. 면허 취득 과정에서도 이런 점이 간과되기 일쑤다. 서울의 한 경찰서 관계자는 “초보자들은 가령 운전대를 어느 방향으로 돌리면 차가 어느 각도로 얼마나 이동하는지 등과 같은 공간감각은 물론이고 공간 활용에 대한 이해도도 낮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 1년 미만 초보 연평균 사고 73.1건

도로교통공단 등 관련 기관에서는 통상적으로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2년이 되지 않은 이들을 초보운전자로 간주한다. 특히 교통사고는 면허 취득 1년 미만일 때 많이 벌어지는 양상을 보인다.

도로교통공단이 2017년부터 3년간 운전 경력에 따른 운전자들의 교통사고 건수를 분석한 결과, 1년 미만 초보운전자의 연평균 사고 건수는 1만 명당 73.1건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준으로 1년 이상 2년 미만인 운전자는 56.2건, 2년 이상 3년 미만은 51.9건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적지 않다. 3년 이상 4년 미만 운전자(45.7건)보다는 약 1.6배나 많다. 교통공단 관계자는 “초보운전자는 아직 운전 감각이 떨어지고, 도로 상황에도 익숙지 않다”며 “다만 4년 이상 넘어가면 다시 사고가 느는 건 실력을 과신해 부주의하게 운전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초보운전자들은 상황 판단의 실수로 빚어지는 사고가 대부분이다. 서울에 사는 김지민 씨(19)도 3월 면허증을 발급받은 지 일주일 만에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다가 사고를 냈다. 인도 경계석과 차량과의 거리를 잘못 판단해 너무 일찍 운전대를 꺾었다고 한다. 그는 “다행히 휠과 타이어 교체로 그쳤지만, 만약 보행자라도 있었다면 큰일 날 뻔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국내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려면 교통안전교육과 학과시험, 기능시험, 도로주행을 통과해야 한다. 얼핏 보기엔 다양한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사실 교통안전교육은 1시간짜리 영상을 시청하는 게 전부다. 기능시험과 도로주행도 각각 4시간과 6시간만 교육시간을 채우면 곧바로 응시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한 운전면허시험장 관계자는 “애초에 국내 운전면허가 제도 설계 단계부터 더 빨리 운전을 할 수 있도록 ‘편의성’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라 지적했다.

박무혁 도로교통공단 교수는 “면허가 정지 또는 취소되지 않는 한 운전자는 평생 안전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며 “지금의 1시간 영상 교육으론 턱없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운전 편의성 중심의 법규를 가르치는 데에서 나아가 보행자 안전까지 포함한 교통 예절과 윤리 교육이 강화돼야 한단 설명이다.


▼ 독일, 고속도로-밤길-시골길 등 나눠 교육 진행

일본, 필기-주행수업만 60시간
핀란드, 2년 무사고뒤 정식면허증

해외에선 운전면허 취득이 어렵기로 소문난 나라들이 적지 않다. 필기시험 통과 기준도 높을 뿐만 아니라 기능 관련 시험도 다양하고 복잡하다.

다양한 분야에서 교통선진국으로 꼽히는 독일은 필기시험부터 만만치 않다. 시험에 앞서 응시생은 90분짜리 학과 교육 14회를 이수해야 한다. 시험은 모두 1000가지 문제 가운데 30개를 출제하고 10점 이상 틀리면 불합격이다. 한 문제당 최대 5점을 배점하기 때문에 2, 3개만 틀려도 재시험을 봐야 한다. 독일 연방 교통관리국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필기시험의 합격률은 56%밖에 되지 않는다. 2명 중 1명은 낙방하는 셈이다.

독일은 실기 수업 역시 단순히 시간만 채워선 통과하기 어렵다. 일단 도로 유형별로 할당된 시간부터 다르다. 고속도로 주행 운전이 4시간, 밤길 운전 역시 3시간, 심지어 시골길 운전도 5시간씩 이수해야 한다. 한 교통전문가는 “시험이 통과에 목적이 있기보다는 응시생이 도로마다 각기 다른 운전 환경에서도 적응하도록 돕기 위한 프로그램”이라 설명했다.

영국의 운전면허 시험에는 ‘보여주고 말해 달라(Show me, tell me)’는 특이한 제도가 있다. ‘말해 달라’ 평가는 도로주행 출발에 앞서 조수석에 앉은 심사관이 응시생에게 무작위로 교통안전과 관련한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잠김방지브레이크시스템(ABS)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알아채고 해결할 수 있는지 말해 달라’와 같은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변해야 한다.

‘보여 달라’는 도로주행 도중에 진행한다. 운전을 하고 있는 응시자에게 갑작스레 ‘어떻게 자동차 뒷유리 김 서림을 없애는지 보여 달라’ 등을 요구한다고 한다. 우왕좌왕할 새 없이 심사관의 기습 요구에 즉각 대응해야 해 사전에 충분한 주행 연습은 필수적이다.

일본도 심사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응시생의 90% 이상이 교습소를 찾는데, 학과 교육 10시간과 장내 코스 주행 15시간을 이수해야 한다. 시간을 채우면 1차 학과시험과 도로주행 시험을 볼 수 있는 임시 면허증이 발급된다. 1차 시험에서 합격해도 다시 16시간의 학과 수업과 19시간의 주행 수업을 들어야 한다. 다음 2차 도로주행 시험을 통과하면 교습소 졸업생으로 인정받는다. 응시생은 교습소 졸업증명서를 제출하고 정부가 지정한 운전면허 시험장에서 최종 학과 시험을 거쳐 면허증을 발급받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일본은 면허증 취득 1년 이내인 초보운전자에게 ‘초보운전자 전용 표지’ 부착을 의무화하고 있다. 또 숙련된 운전자와 다른 색깔의 면허증을 3년 동안 소지해야 한다. 핀란드 역시 첫 2년 동안 임시면허증으로 운전하고, 무사고 경력이 인정돼야 이후 정식 면허로 전환해준다고 한다. 하승우 한국교통안전공단 화성교육센터 교수는 “교통선진국일수록 운전면허제도는 교육 단계부터 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이 깃들어 있다”고 평했다.


○ 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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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별취재팀

▽ 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 서형석(산업1부) 김동혁(경제부) 정순구(산업2부) 전채은(사회부) 신아형(국제부) 기자
#장롱 면허#운전 면허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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