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100주년 기획 / 극과 극이 만나다]
지방대서 제자 양성 최종렬 교수, 자녀 대입 6회 강남 엄마 김영실 씨
극단이 마주한 순간, 말 그대로 ‘전쟁’이 벌어졌다.
대구에 사는 최종렬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55)는 지난달 19일 서울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그의 상대는 강남 8학군에서 자녀의 대학입시만 6번 치렀다는 김영실 씨(48).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 최 교수는 진보에서 여섯 번째, 김 씨는 보수에서 첫 번째. 94나 격차가 나는 ‘물과 기름’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오후 2시경 용산구의 한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온 김 씨의 손엔 온갖 근거와 수치가 빼곡한 ‘비밀노트’ 한 권이 들려 있었다. “나 오늘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어요.” 거침없는 그의 말에 최 교수도 곧장 자세를 가다듬었다. ▽김=강남에서 아이 셋을 키웠어요. 둘째가 삼수, 막내가 재수해 대학입시만 여섯 번 치렀어요. 산전수전 다 겪었죠. 그런데 요즘 천불이 나요. 지역인재 의무채용? 어떻게 보낸 대학인데 이런 개악을 저질러요. 많이 들 땐 애들 사교육비로 한 달에 1000만 원도 써봤어요. 뼈 빠지게 벌어 투자하면 뭐 해요. 열심히 가르쳐 봐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데, 어느 부모가 애 뒷바라지를 하겠느냐고요.
▽최=저도 지방에서 가르치기 전엔 이렇게 소외받는 줄 몰랐습니다. 지방대생은 일부를 제외하면 ‘좋은 직장’이란 꿈조차 꾸질 않아요. 입시부터 실패를 경험해 본 아이들이라 상처가 쌓여 있거든요. 근데 대학 오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이 회사는 학벌 많이 봐”예요. 300인 이상 기업은 수도권에 편중됐고, 지방엔 저임금 일자리 위주거든요. 졸업해도 갈 데가 없어 자영업에 뛰어듭니다. 지역인재 의무채용 제도는 그런 청년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 줄 수 있어요. 출신에 관계없이 안정적 일자리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거예요.
▽김=지방에서 열심히 해서 ‘인서울’한 경우는요. 이들은 지방대가 아니라서 이 전형에 지원도 못 해요. 역차별인 거죠. 솔직히 누가 인재인가요. 촌에서 노력해서 서울 온 청년들이 인재 아닌가요? 실력 차가 있다면 결과도 달라야죠.
▽최=역차별을 말하기 전에 지금 한국 사회의 서울중심주의로 인한 폐해를 한번 들여다보자고요. 지방 청년들은 도전하고 싶어도 제반시설이 없어요. 실습실조차 없어 서울로 가기도 해요. 실력의 차이를 말씀하시는데, 그 전에 구조적 차별이 커요.
▽김=시설이 없으면 지어주는 데 힘을 쏟아야죠. 실력이 안 되는데 특혜 줘가며 채용제도를 바꾸지 말고요. 지역불균형만 따질 게 아니라 본인들 스펙 키울 생각을 왜 안 하냐고요. 외부 탓해서 뭐가 바뀌나요. 솔직히 말할게요. 큰아들이 지방대 4학년이에요. 근데 제가 봐도 열심히 안 해요. 수도권 패션디자인학과 다니는 둘째 딸은 뭐든 열심히 해요. 휴학까지 해가며 이모티콘 브랜드를 만들어 내놓더라고요. 잘못된 제도는 열심히 노력하는 청년의 꿈을 박탈합니다.
▽최=그렇지 않아요. 꿈을 뺏긴다는 건 과장이에요. 현행법에서 공공기관의 지역인재 의무채용 비율은 전체의 최대 30%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게 전부 채워지지도 않아요. 게다가 능력 있는 수도권 인재라면 70%의 기회가 있잖아요.
▽김=공공기관이든 민간기업이든 다들 능력 있는 인재를 뽑고 싶은 거 아니겠어요? 이게 법으로 강제한다고 될 일이냐고요. 노력의 총량이 다른데 똑같은 대가를 바라는 게 오히려 불공정이죠.
▽최=어떻게 하는 게 공정하다고 생각하시는데요.
▽김=1등부터 100등. 정확하게 줄 세워야죠. 차별이 아니라 차이를 만들자는 거예요. 가산점, 특혜가 왜 필요해요. 변별력 있는 문제 내서 실력대로 뽑으면 된다고요. 출신 대학도 스펙도 모두 실력이에요.
▽최=청년들을 줄 세우면 모두가 숨이 차게 뜀박질해야 해요. 그게 청년들을 위한 걸까요.
▽김=경쟁 없이 어떻게 사회가 발전해요.
▽최=경쟁을 없애자는 게 아닙니다. 극단적인 경쟁이 더 나은 삶을 보장하느냐는 거죠.
▽김=금메달 없는 올림픽을 왜 열어요? 참가에 의의를 둔 사람은 그렇게 살라고 하세요. 메달 따려고 피땀 흘린 걸 폄하하면 안 되죠.
▽최=삶이 운동 경기는 아니잖아요. 줄 세우는 시험이 언뜻 보면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하지만 1등 빼고 나머지 청년들은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요.
▽김=상처 없이 어떻게 살아요. 상처를 극복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죠. 명확하게 등수 공개하고 내가 왜 떨어졌는지 납득하게 해주면, 젊은 사람은 금방 털고 일어날 수 있어요. 기회를 박탈당하는 게 문제죠. 지금 수도권 대학생들은 불공정하다고 느낀다니까요.
▽최=자꾸 공정을 얘기하시네요. 청년들이 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세상이 공정한 사회죠. 내 밥그릇 뺏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싸우느라 청년들의 꿈이 쪼그라들었어요. 이건 기성세대의 잘못이에요.
▽김=현실에선 당연히 내 밥그릇이 중요하죠. 청년들이 무슨 잘못이에요. 스펙 쌓으라고 해서 쌓았고, 좋은 대학 가라 해서 간 것뿐인데…. 노력해도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 세상을 물려준 것만 같아서, 아이 셋을 낳아 기른 걸 지금처럼 후회한 적이 없어요.
1초도 쉬지 않고 이어진 대화는 2시간 30분이 넘어서야 끝이 났다. 대화가 마무리된 뒤에도 김 씨는 “전혀 공감할 수 없다”고 답했다. 최 교수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다시 서울과 대구, 270여 km가 떨어진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게 하나 있었다. 그들은 대화에서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상대에 대해서가 아니다. 입시와 취업으로 이어지는 험난한 과정에 상처받는 청년들에게 품은 속내였다. 물론 맥락도 해결 방법도 달랐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픈 맘이 서로 진심이란 걸 받아들인다면, 혹 있을지 모를 두 번째 만남에선 어떤 얘기를 주고받을까. 우린 그걸 ‘미래’라 부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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