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로 나간 명문대-지방대생이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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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이 만나다

서울과 지방. 대기업 사원과 유튜버. 손지수 씨(29)와 최지욱 씨(27)는 살아온 삶의 궤적이 무척이나 다르다. 정치·사회 성향조사에서도 지수는 보수에서 8번째, 지욱은 진보에서 14번째로 극단을 달렸다. 21일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만난 둘은 2시간동안 양보 없는 논쟁을 펼쳤다. 큰 접점도 찾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또래 청년들의 취업에 깊은 고민을 갖고 있었다. 그들이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던 말들을 정리했다.

● 지수의 돌직구
학벌도 능력이라 생각해요. ‘서울대 출신’이란 제 이력은 초·중·고 12년간의 성실함을 입증해주는 자격증입니다. 직장에서 종종 “서울대 출신은 다르다”는 말도 듣곤 해요. 이건 제가 단지 서울대라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평가라 생각합니다. 특히 창의성보다 성실성이 중요시되는 직무에선 학벌이 여전히 중요하게 평가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봅니다.

대학 졸업 뒤 입사한 대기업 인사팀에서 ‘블라인드 제도’로 신입사원을 뽑는 과정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다양한 출신의 인재가 올 거란 기대가 컸죠. 막상 결과는 100명 중 90명이 수도권 대학 출신이었어요. 학교 간판이 문제가 아니라, 지원자의 실력 차가 분명했어요. 게다가 학력이라는 기준점을 지워버리니 오히려 첫인상이나 화술처럼 ‘이미지’로 사람을 판단하게 되더군요.

지방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도 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삶의 궤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어쩔 수 없이 개인의 책임과 선택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서울에 비해 지역에 교육 인프라가 없다는 데에는 동의해요. 하지만 한계를 이겨내고 노력해온 친구들도 주위에서 많이 봐왔어요.

기업이 지역인재를 일정 비율 채용하도록 법안이 발의됐다는데, 그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런데 준비가 부족한 이를 지방대 출신이란 이유만으로 합격시키면 그게 조직은 물론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될까요.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능력이 기준점이 돼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당하게 실력으로 경쟁하려는 지원자들은 억울하지 않을까요. 이게 진짜로 청년들이 원하는 세상일까요.

● 지욱의 토로
학창 시절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인서울’을 위한 발버둥이었어요.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대학입시에서 기대했던 점수를 받지 못한 뒤 영남대 언론정보학과에 진학했을 때부터 솔직히 주눅이 들었어요. 고교 졸업식 때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지방대에 합격한 친구들은 어쩐지 어깨가 모두 움츠러들어 있었죠.

‘지방대 출신’이란 꼬리표는 대학 내내 낙인처럼 저를 쫓아다녔어요. 마지막 학기에 들었던 취업 컨설팅 수업 시간에 이름만 대면 아는 한 대기업의 전직 임원이 강의하러 오셨어요. 정말 자연스럽게 “영남대까지는 지원서를 보기는 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희망이 생긴 게 아니라 오히려 절망스러웠습니다. 현실엔 학벌 커트라인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걸 직접 체감한 순간이었습니다.

꿈의 한계에 부딪힐 때도 있었어요. 지금 전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활동하고 있는데, 소속사가 서울 강남에 있어요. 매니저가 바뀌거나 컨설팅을 받으려면 서울까지 270여㎞를 가야만 합니다. 2017년 7월 처음 유튜브 크리에이터에 도전할 땐, 살고 있던 지방에선 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배울 만한 마땅한 곳이 없을 정도였어요. 결국 독학으로 터득했어요.

스물일곱, 또래의 지역 친구들은 아직도 ‘인서울’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어요. 그들이 밤낮 없이 일해 받는 월급은 겨우 200만 원 남짓.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미래를 위해 투자하기엔 턱없이 부족해요. 모두들 “하루빨리 이곳을 뜨자”고만 합니다.

청년들이 떠나고만 싶어하는 고향을 바라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모든 것이 서울에 쏠려 있는 현재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좌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지방 청년들을 일으켜 세워줄 정책은 아무리 고민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

○ 특별취재팀

▽ 지민구 이소연 한성희 신지환(이상 사회부) 조건희 기자
▽ 방선영 성신여대 사회교육과 4학년, 허원미 숙명여대 시각영상디자인학과 졸업,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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