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랑은 차원이 다르네요”
5년 전인 2016년 서울시민에서 제주도민이 된 최경진씨(44)는 지난 2일 밤 제주를 통과한 제9호 태풍 ‘마이삭(MAYSAK)’의 위력에 혀를 내둘렀다.
해안 근처에 거주하는 최씨의 집에는 비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소파를 비롯한 가구 등이 빗물에 젖어 눈물을 머금고 버려야 했다.
최씨는 “제주에 이주하고 나서야 태풍의 무서움과 정전 등의 불편함을 처음 느꼈다”며 “도민들은 평생 이런 경험을 하며 살았고 또 금방 바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고 대단하구나 생각했다”고 전했다.
태풍이 최근접하던 시각 서귀포 한 호텔에서 숙박한 관광객 A씨(26)도 새벽 내내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강풍에 객실 통창이 깨질 듯 흔들리고 강풍에 도내 곳곳에서 고압선이 절단되며 A씨가 묵었던 호텔도 전기 공급이 끊겼다.
전기가 끊기는 바람에 에어컨도 멈춰 새벽 내내 찜통 더위에 시달려야 했다.
A씨는 “에어컨이 끊겨 집에서보다 더 무더운 밤을 보냈다”며 “그나마 큰 피해 없이 지나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태풍의 길목’이라지만…열흘 사이 3개
제주는 태풍이 비껴가기도 하는 수도권과 달리 매해 태풍에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놓인다. ‘태풍의 길목’이라 불리는 이유다.
‘바비(8월26일)’, ‘마이삭(9월2일)’에 이어서 현재 일본 남쪽해상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는 ‘하이선(9월6~7일 예상)도 북상 중이다.
제주에 큰 영향은 없었지만 8월1일 내습한 ’제5호 태풍 장미‘를 포함하면 올해만 4개의 태풍이 제주를 거쳐간 셈이다.
평년에는 2~3개의 태풍에 영향을 받곤 했다.
해수면 온도가 높아 앞으로 태풍 영향은 또 있을 수 있다.
태풍이 제주에 가장 많이 영향을 준 해는 ’링링‘, ’타파‘ 등이 내습했던 2019년으로 무려 7개의 태풍이 제주를 강타했다.
제주도 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959년 이후 제주에 내습한 태풍과 호우는 155회, 인명피해는 315명(사망 83명, 실종 55명, 부상 177명)이다. 재산피해액은 4832억2100만원에 달한다.
제주 태풍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조선 후기인 1653년(효종 4) 태풍을 만나 제주 해안에 불시착한 네덜란드 상인 헨드릭 하멜도 빼놓을 수 없다.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는 훗날 하멜 표류기로 유명해진 하멜 일행의 착륙을 기념한 전시관이 설치돼 있다.
태풍을 가장 많이 겪는 제주도지만 오히려 내륙에 비해 인명피해를 비롯해 큰 피해가 발생한 때는 손에 꼽을만큼 드물었다.
이를 두고 평소에도 바람이 강해 강풍 대비에 능숙하다거나 지질적인 특성으로 비가 와도 땅속에 스며들어 홍수가 나지 않는다 등의 얘기가 도민사회에서는 회자된다.
그래도 방심은 그물이다.
제주에서 11명이 숨지고 107명이 다친 ’사라호‘는 2000년대 이전까지 역대 최악의 태풍이라 불렸다.
특히 2007년 태풍 ’나리‘는 제주에서 태풍 피해가 덜 하다는 편견을 깼다.
태풍 나리로 제주에서만 13명이 숨졌고 재산피해액은 1300억원을 넘었다.
2012년 연이어 들이닥친 태풍 ’볼라벤‘과 ’덴빈‘, 2016년 ’차바‘도 태풍의 위력을 새삼 일깨웠던 재앙이었다.
볼라벤과 덴빈으로 서귀포 해상에서 정박해 있던 중국어선 2척이 좌초해 15명이 숨졌거나 실종되고 서귀포항 방파제가 훼손되는 등 재산피해액은 572억원 기록했다.
마이삭을 제외하고 제주에서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태풍은 2016년 ’차바‘다.
한천이 범람해 복개구조물 위 주차장에서 세워졌던 차량 수십대가 파손되는 등 620억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이 태풍을 계기로 하천 범람의 위험성이 각인됐다.
10호 태풍 하이선(Haishen)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하이선은 오는 6일 오전 9시 920h㎩(헥토파스칼)로 가장 강하게 발달한 상태에서 제주도 동쪽해상을 지날 것으로 보인다.
이때는 서귀포 남남동쪽 700㎞ 떨어져 있지만 강풍반경이 커서 주의해야 한다고 기상청은 당부했다.
(제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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