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병원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의 무기한 집단휴진(파업) 속에 7일 3번째 총파업을 앞둔 대한의사협회(의협)가 4일 보건복지부, 더불어민주당과 극적으로 합의했다. 7월 23일 당정이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공의대 설립 등의 방안을 확정해 발표한 지 43일 만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위기가 심각한 탓도 있지만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실기시험 무더기 취소가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4일 오후 6시까지 응시 취소를 번복하지 않으면 1주일 연장조치에 따라 8일 시작 예정인 시험을 볼 수 없다. 이렇게 되면 내년도 배출될 의사 수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 ‘협의기구 통한 논의’ 명문화
의협과 민주당이 서명한 합의문에는 양측이 참여하는 국회 내 협의체를 통해 정책을 원점에서 재논의한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또 협의체에서 논의가 진행 중일 땐 일방적인 법안처리 등 강행은 하지 않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의협과 복지부 합의문에서는 복지부가 관련 정책을 중단하고 국회 내 협의체의 논의결과를 존중하며 이행할 것을 명문화했다. 복지부 역시 의과대학 정원 확대 등을 일방적으로 강행할 수 없다는 내용도 들어갔다.
이에 따라 의료계가 강경하게 반대한 의대 정원 확대, 공공의대 신설 등 문제는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시기에 협의체를 통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협의체에는 의협 관계자뿐만 아니라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전임의협의회 등 파업을 주도한 다른 단체도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협상 타결로 정부는 의협과 전공의들에 대한 법적조치를 모두 취하했다.
청와대는 일단 코로나19 상황이 안정된 뒤 이르면 다음 달부터 공공의대 등 관련 논의가 다시 진행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합의문의 ‘코로나 안정화’라는 표현이 백신 개발 등을 통한 ‘코로나 종식’이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여권 관계자는 “코로나가 안정되고 의료진들 내부 의견이 정리되는 대로 협의체를 가동할 것”이라며 “정기국회 안에 가능한 부분들은 해야 되는 만큼 10월 중에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전공의 반발, 현장 복귀는 미정
대전협을 포함한 젊은의사 비상대책위원회는 “최종 합의문을 보지도 못해 합의에 동의한 적이 없으며 합의된 사실조차 몰랐다”며 반발하고 있다. 막판 협상 과정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4일 새벽 1시 의협과 전임의, 전공의는 ‘정책 철회’ ‘원점 재논의’ 문구가 담긴 의료계의 합의문을 민주당에 제시했다고 한다. 이날 새벽 4시 민주당이 ‘정책 철회’ 문구를 뺀 합의문이 의협 관계자들에게 전달됐고 이대로 협상이 타결됐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 의협 내부에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파업 투쟁을 이끌어온 젊은의사 비대위를 배신하고 전체 의사들을 우롱한 최 회장 및 의협 집행부는 전원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의협 대의원으로 활동 중인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도 최 회장과 제40대 의협 임원 전원을 불신임하는 결의를 촉구했다.
의료계 내분에 합의문 서명도 당초 예정된 시각보다 늦어졌다. 민주당과 의협의 합의문 서명은 애초 오전 8시 30분에 시작될 예정이었으나 오전 10시에야 진행됐다. 복지부와 의협 사이의 합의문 서명 일정 역시 오전 11시에서 오후 2시 40분경으로 미뤄졌다. 전공의 80여 명이 “졸속 행정도, 졸속 합의도 모두 반대”라고 적힌 A4용지를 들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에서 항의했기 때문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했고 최대집 의협 회장은 지하에서 전공의들에게 막혀 건물 내에 진입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 합의문에는 “집단행동을 중단하고 진료현장에 복귀한다”가 담겼지만 전공의들의 현장 복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파업의 명분이 사라져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일부 대형 수련병원에서는 전임의들에게 수술장으로 복귀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전략기획반장은 “대전협에서도 이 합의문의 이행을 믿어주시고 진료에 복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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