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동혁(사진)은 7월에 서른여섯 번째 생일을 지났다. 그의 36년 삶 중 3분의 1을 갓 지난 1996년 10월, 그의 이름이 처음 신문에 등장했다. 동아일보가 단독 보도한 모스크바 국제 청소년 쇼팽콩쿠르 2위 입상 소식이었다. 우승은 16세의 형 동민 씨(현 계명대 교수)가 차지했다. 당시 기사에서 그는 “러시아 음악교육은 학생이 혼자 음악을 찾아나가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치 형이 한 얘기 같은데요. 그때 일이 별로 기억나지 않아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2003년)만 해도 엊그제 같은데.” 기자를 만난 그는 “까마득한 얘기”라며 웃었다.
그 기사를 시작으로 임동혁이란 이름은 줄곧 동아일보 지면을 수놓았다. 2001년 12월, 17세였던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콩쿠르에 참가해 20대 연주자들과 겨룬 끝에 대상, 솔로 리사이틀 상, 오케스트라 협연상 등 5개 부문 상을 휩쓸었다. 동아일보는 파리에 있는 그와 통화해 상세한 승전보를 전했다. 그는 “어리지만 내면이 우러나는 연주로 승부하려 했는데 통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2003년 6월 10일, 음악 팬들을 놀라게 한 소식이 동아일보 단독 보도로 전해졌다. 임동혁이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3위에 올랐지만 주최 측에 심사 결과에 대한 불만을 알리고 수상을 거부한 것.
“상황을 마음속으로 정리한 순간 동아일보에서 전화가 왔죠. 그 뒤로도 당시 결정과 관련해 수없이 질문을 받았어요. 제게 꼬리표처럼 붙어 다닌 셈이죠.”
그 일로 세계 음악계에서 미움을 샀을 것이라는 얘기도 뒤따랐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목소리를 낸다고 바뀌지는 않을 일이었고요.”
국내 음악 관계자와 팬들은 늘 원군(援軍)이었다. 2005년 12월 동아일보는 그해 가장 훌륭한 활동을 펼친 ‘우리 분야 최고’를 선정 보도했다.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연주자로 뽑힌 주인공 역시 임동혁이었다. 그해 그는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 참가해 형 동민 씨와 함께 공동 3위에 올랐다.
2006년 12월엔 그의 글이 동아일보 지면에 실렸다. 각계 인사가 ‘자신이 사랑하는 대중문화 스타’에 대해 쓰는 릴레이 연재 ‘내 마음속의 별’ 기획이었다. 임동혁은 마음속의 별로 연기자 이영애를 선택했다. 이영애의 청순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곡으로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2악장을 추천했다. 지금도 ‘팬심’을 유지하고 있을까. 그는 “좋아하는 연예인의 폭이 더 넓어졌다”고 말했다. “최근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홍보대사로 함께 위촉돼 활동하게 된 배우 박보영 씨를 만났어요. 예쁘시던데요(웃음).”
그는 “음악에만 집중하느라 최근 특별한 우상이 없었다. 매일 자신을 이겨내는 게 쉽지 않다”고도 했다. 11월 6일에는 롯데콘서트홀에서 슈만 ‘어린이 정경’,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 23번 ‘열정’ 등을 연주한다. ‘피아노 팬들에게 친숙한 레퍼토리’라고 했더니 “그래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14년 월광을 국내에서 연주했는데 평이 매우 좋았어요. 최소한 그것보다는 잘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가 ‘매일 자신을 이겨나가는 싸움’이라고 한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됐다.
“동아일보가 기록해온 제 지난날을 돌아보니 흥미롭고, 어떤 부분은 아쉬움도 드네요. 좋은 소식들로 기록되도록 할 테니 지켜봐 주세요.”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