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호 며느리 등 후손 3명 제기
국가에 3억원 손배소…원고 패소
법원 "단재 소유 인정하기 부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단재 신채호(1880~1936) 선생의 후손들이 옛 삼청동 집터를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6부(부장판사 이광영)는 9일 단재의 며느리 이모씨 등 후손 3명이 재단법인 선학원과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제기한 소유권 이전등기 등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다만 후손들은 지난 5월 재단법인 선학원에 대한 소를 취하한 이후로는 국가를 상대로만 소송을 이어왔다.
단재는 1910년 4월 중국으로 망명한 뒤 독립운동을 하다가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여순 감옥에서 복역하던 중 1936년 2월 영양실조 등으로 순국했다.
그는 망명 직전 서울 삼청동 2-1번지에 거주했는데, 망명을 떠나기 직전 대한매일신보에 ‘본인소유 초가 6칸의 문권(文券)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했기에 광고하니 쓸모없는 휴지로 처리하시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후손들은 이 기사 등을 근거로 “단재는 삼청동 2통 4호에 거주했고, 동 토지는 단재 소유였다”며 국가를 상대로 총 3억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후손들의 주장에 따르면 단재가 중국으로 망명한 후 2년이 지난 1912년 11월께 이 사건 토지는 국가(國)의 명의로 사정됐고, 1939년 9월에는 일본인을 거쳐 다른 사람의 명의로 소유권이전등기가 마쳐졌다. 현재 이 토지는 재단법인 선학원 명의로 등기돼 있다.
이들은 “국가는 독립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할 의무가 있다”며 “위 의무에는 독립유공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억울하게 침탈당한 재산권을 회복시켜 그 후손에게 귀속시킬 의무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가 독립유공자인 단재의 재산 보전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으면 그 소유권을 회복해 귀속재산으로서 단재의 후손에게 양여할 수도 있었다”며 “국가는 이러한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단재 및 그 후손으로 하여금 이 사건 토지의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는 손해를 입혔으므로 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에 대해 “국가에게 후손들이 주장하는 ‘독립유공자들이 일제 강점기에 억울하게 침탈당한 재산권을 회복시켜 그 후손에게 귀속시킬 작위의무’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국가가 객관적 정당성을 결여해 현저하게 불합리한 부작위로써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을 위반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국가배상책임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독립유공자법에는 ‘독립운동으로 포기하거나 빼앗긴 재산을 회복할 의무’는 명시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고 ▲공무원의 부작위로 인해 단재 및 그 상속인의 재산에 절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국가보훈처가 2차례에 걸쳐 실시한 실태조사 당시 원고들이 국가에 단재의 재산회복을 요청한 적은 없는 것으로 보이고 ▲국가가 이 사건 토지가 원래 단재의 소유였음을 인지했다고 볼 만한 자료도 없다고 판단했다.
아울러 재판부는 “‘선생은 서울 삼청동에 거주했다’는 단재연보 내용만으로는 이 사건 토지가 단재의 소유였음을 인정하기는 부족하다”며 “단재가 대한매일신보에 실었다는 기사도 단재가 ‘초가 6칸의 문권을 분실했다’는 것에 불과해 독립운동으로 인해 피탈당했다는 내용이 아니고, 그 ‘대지’에 관한 것도 아니다”라며 원고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한편, 이들은 당초 재단법인 선학원을 상대로도 소유권 이전등기 절차 이행을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5월 소를 취하했다.
당초 이들은 “재단법인 선학원이 유효하게 이 토지 소유권을 승계 취득했다고 입증하지 못하는 한 그 등기는 말소해야 할 것”이라며 현재 삼청동 2-1 및 2-2 토지 등으로 분할돼 재단법인 선학원 명의로 등기돼 있는 토지의 반환을 요구한 바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