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남성이 대전 유성구 한국천문연구원(KASI)에 찾아와 “성폭행범으로 지목된 아들의 누명을 벗겨 달라”고 하소연했다. 오후 9시경 공원에서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여성이 가로등은 없었지만 달빛 때문에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고(古)천문연구그룹장이었던 안영숙 우주과학과 책임연구원(천문학 박사·사진)은 사건 당일을 음력으로 환산해 추적했다. 그 결과 사건 당일은 그믐에 가까워 새벽녘에야 달이 떴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70대 남성은 이를 증빙한 서류를 받아들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돌아갔다.
안 박사는 “2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이제 이런 정보를 연구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찾아와 확인하고 증빙서류를 떼 가야 했다”며 “천문역법 자료는 생활과 밀접해 지금도 일반 국민의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 경찰청, 기상청 등 정부기관들도 일·출몰시간 등을 물어온다. 군부대는 작전을 위해 박명 시간을 확인 요청한다.
천문연구원은 10일 40여 년 동안 국민에게 생활천문 서비스를 해온 안 박사를 ‘올해의 KASI인상’ 수상자로 선정해 시상식을 가졌다.
그는 1977년 천문연구원에 입사해 생활역법은 물론이고 고천문학 확립에 기여했다. 천문역법 현대화는 빼놓을 수 없는 성과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날짜 기록을 양력으로 모두 변환한 것이 그중 하나다. 이 작업으로 고서의 ‘高麗 顯宗 十五年 甲子 十一月 乙丑朔’은 ‘1024년 12월 4일’로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됐다.
또 천체 위치와 시간을 측정하는 고대 천문의기 16점을 복원하고 천문 현상 기록 등을 10권의 도서로 시대별로 정리했다. 올해 출판한 ‘고려시대 천문현상 기록집’에는 고려사 등에 기록된 일식, 혜성, 행성 움직임 등이 망라돼 있다. 안 박사는 “앞으로 조선시대 천문 현상 기록집도 분석 정리해 천문기록 현대화의 한 매듭을 짓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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