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주문하신 치킨 배달 가다 참변… 배달 안돼 죄송”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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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車에 아빠 잃은 딸, “배달 안 와” 항의 고객에 사과 글
“저녁도 못 드시고 마지막 배달” 靑청원엔 이틀만에 43만명 동의
경찰청장 “의혹 없도록 수사해라”

11일 온라인에서는 인천 을왕리에서 치킨 배달을 하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피해자의 딸이 당일 치킨을 받지 못한 고객에게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답글이 화제가 됐다. 배달앱 캡처
11일 온라인에서는 인천 을왕리에서 치킨 배달을 하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피해자의 딸이 당일 치킨을 받지 못한 고객에게 남긴 것으로 추정되는 답글이 화제가 됐다. 배달앱 캡처
“어머니는 구급대원에게 오로지 한 가지만 물어봤다고 합니다. 의식은 있나요, 의식은 있나요, 의식은 있나요…. 대답을 해주지 않는 구급대원을 보고 이미 저희 어머니의 세상은 무너졌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다음 날. 치킨 배달이 안 왔다며 불만을 표한 고객에게도 차분하게 “죄송하다”고 답했던 딸은 딱 한 가지만 바란다고 세상에 호소했다. “너무 해드리지 못한 게 많습니다. 제발 마지막으로 가해자가 법을 악용해 빠져나가지 않게, 그거라도 할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10일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9월 9일 오전 1시경 을왕리 음주운전 역주행으로 참변을 당한 50대 가장의 딸입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청원인은 자신의 아버지가 “주문이 많아서 저녁도 못 드시고 마지막 배달이라며 나가셨다”며 “손님들한테 친절하게 배달하겠다는 책임감만으로 배달원 한번 안 쓰고 직접 배달해 오셨다. 평생 열심히 안 사신 적이 없다”고 떠올렸다.

해당 청원은 11일 오후 하루 만에 43만 명이 넘게 동의했다. 게시 30일 내에 20만 명 이상 동의한 청원은 청와대 수석비서관이나 담당 부처 장관 등이 공식 답변을 해야 한다.

아버지를 여읜 딸이 쓴 걸로 추정되는 또 다른 글도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9일 새벽 한 배달 앱에는 인천에 있는 A치킨가게 후기에 “배달도 오지 않고 연락도 안 된다”는 취지의 항의성 글이 올라왔다. 다음 날 자신을 A가게 사장의 딸이라 밝힌 이는 “너무 죄송하다. 손님분 치킨 배달을 가다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참변을 당하셨다. 치킨이 안 와서 속상하셨을 텐데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답을 달았다. 현재 해당 앱에는 고객이 남긴 후기는 지워졌고 답글만 남아있다.

경찰에 따르면 A가게 사장은 9일 0시 55분경 인천 중구 을왕리의 한 도로에서 오토바이를 몰고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온 B 씨(33)의 승용차에 치였다. 심폐소생술(CPR)을 받으며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적발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면허취소 수치를 넘었다고 한다. B 씨는 경찰 조사에서 “술을 마시고 운전한 게 맞다. 빗길이라 중앙선을 침범한지 몰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윤창호 법’을 적용해 B 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위험 운전 치사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B 씨와 동승했던 40대 남성 또한 음주운전 방조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 관계자는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하려 차량 블랙박스와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11일 김병구 인천지방경찰청장에게 “해당 사고에 대해 신속 엄정하고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수사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청은 “갑작스럽게 가장을 떠나보내신 유족들의 아픔에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B 씨의 영장실질심사는 14일 오후 2시 반경 인천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청아 clearlee@donga.com / 인천=황금천 기자
#치킨 배달 사고#음주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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