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송파구에 있는 지하철 9호선 송파나루역 인근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DT) 매장. 출근 시간대인 오전 8시 반경인데도 매장 앞 차도는 다소 한산한 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수도권 재확산으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영향이 커보였다.
하지만 유독 매장 앞에 있는 차도 주변만 차들이 몰려 혼잡했다. 드라이브스루 매장으로 진입하려는 차들이 7, 8대나 길게 줄을 선 탓이다. 뒤에서 오다가 대기 줄인 걸 알고 차선을 바꾸려는 차들도 있다 보니 옆 차선까지 빵빵대며 정체가 벌어졌다. 매장 앞을 걸어가던 직장인 이모 씨(31)는 “매장으로 들어가는 인도도 차들이 막고 서서 지나가기 불편하다”며 “차 사이를 걸어가다 뒤차가 덜컥 움직이는 바람에 깜짝 놀란 적도 있다”고 말했다.
해외에서 친숙하던 드라이브스루 매장은 최근 국내에서도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다. 차에서 내리지 않고 식음료를 살 수 있다 보니 코로나19 시대에 안성맞춤이란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교통 측면에서 보자면 드라이브스루는 상당한 골칫덩어리다. 매장 주변의 교통 체증을 유발할 뿐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위협적인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 “드라이브스루, 불법 주정차만큼 불편”
국내에서 드라이브스루 매장의 증가를 이끌고 있는 건 패스트푸드전문점 맥도날드와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1992년 부산 해운대구에 개장한 맥도날드 지점이 국내 최초의 드라이브스루 매장이다. 이후 꾸준히 늘어나던 드라이브스루는 최근 증가 속도가 빨라지며 스타벅스가 266개, 맥도날드가 248개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시내에도 현재 24곳(맥도날드)과 16곳(스타벅스)이 영업하고 있다.
드라이브스루 주변에서 교통이 혼잡한 가장 큰 원인은 ‘협소한 대기 장소’로 지목된다. 한 도로교통 전문가는 “차들이 순서대로 매장을 이용하는 방식이라, 몇 대만 몰려도 매장 공간의 대기 장소는 차량으로 가득 찬다”며 “결국 붐비는 시간대는 다른 차들이 도로까지 줄을 설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도로에 차들이 많아지는 출퇴근 시간에는 더 심각하다. 매장 앞에 한두 대만 줄을 서도 교통 정체가 벌어진다. 경찰 관계자는 “왕복 4차선 도로라면 불법 주정차한 차량 1, 2대만 있어도 교통 흐름이 방해받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의 영향으로 드라이브스루 매장을 찾는 시민들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기초자치단체들은 드라이브스루 매장도 방문 고객의 인적사항 등을 QR코드 등을 통해 확보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당연한 조치이긴 하나, 시간이 더 걸리니 대기 줄도 덩달아 길어지고 있다.
보행자 안전 문제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드라이브스루 안전실태 조사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드라이브스루 매장 이용자 500명 가운데 56.6%가 “진입 차량 안전 문제로 불편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87명(17.4%)은 실제로 드라이브스루 진입로에서 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 “신속히 대책 마련해 건설 전부터 감독해야”
문제는 현행법상 규제할 대책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드라이브스루 매장은 건설할 때부터 교통영향평가 대상에서 대부분 제외된다. 교통영향평가 대상인 연면적 1만5000m² 이상 건축물은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으면 각종 문제점을 검토 분석해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에 있는 스타벅스 드라이브스루 매장은 거의 900m²를 넘지 않는다.
교통유발부담금도 면제받는다. 현행법상 연면적 1000m² 이상인 시설물만 부과 대상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도 전국 드라이브스루 매장 가운데 10곳만 교통유발부담금을 내고 있다. 이마저도 일반음식점으로 분류돼 매장당 최대 부담금이 100만 원 정도다.
서울시는 최근 몇 년 동안 관련 민원이 이어지자 올해 1월 ‘드라이브스루 관리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이후 업계 관계자들과 간담회 등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안전요원의 추가 배치 등을 권고하는 수준이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처럼 교통 혼잡을 유발하는 새로운 유형들을 관리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드라이브스루 매장이 늘고 있는 만큼 신속히 대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다만 단순히 규제를 확대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부와 업계가 교통 혼잡 유발 요소를 정확히 짚어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새로 건설하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은 주변 도로 상황에 따라 진입로를 대로변이 아닌 이면 혹은 후면 도로로 변경했다”고 전했다.
이성렬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드라이브스루 매장 주변의 교통 혼잡과 더불어 무리한 차선 변경이나 보행로 진입 과정에서의 안전 문제 등도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며 “매장을 지을 때부터 차량 정체를 줄이는 구조로 설계하는 방식처럼 정부와 민간 업체의 상호 논의로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보행자 못 볼라” 美선 매장 화분 높이까지 규제 ▼
드라이브스루 해외선 어떻게 진입차로 주행차로 구분하고 보행자도로 포장재 다르게 해야 주거지서 일정거리 분리하기도
“화분은 최소 3피트(약 91cm)에서 최고 4피트 높이의 것만 사용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크그로브시에서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적용하는 ‘내부 구조 기준’이란 게 있다. 여기에 보면 매장 주변에 놓는 화분의 크기까지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다. 이게 뭔 의미가 있느냐 싶겠지만, 높은 화분이 방향 표지판이나 보행자를 가려 매장에 진입하는 차량 운전자가 보지 못할까봐 취한 조치다.
드라이브스루 역사가 긴 해외에선 이처럼 교통 혼잡이나 안전을 위해 관련 기준을 조목조목 세워놓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드라이브스루 관련 규정이 사실상 전무한 국내에서 배워야 할 대목이다.
엘크그로브시는 화분 높이만 정해 놓은 게 아니다. 매장 차선이나 보행자 통로를 설치하는 기준도 세세하게 정해뒀다. 음식을 주문하기 위해 대기하는 차선은 매장에서 진출입하거나 주차하는 차량의 동선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 보행자 통로는 “눈에 잘 띄는 질감 있는 재료”로 포장하라는 규정까지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에이잭스시도 드라이브스루 매장의 위치나 차선 구조 등을 꼼꼼하게 규정했다. 드라이브스루는 주거지역으로부터 30m 이상 떨어져야 하며, 대기 차선은 건물 뒤편이나 매장 내부의 측면에 만들어 공공도로와 맞닿지 않아야 한다.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시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의 차량 출입구는 교차로의 혼잡을 막기 위해 교차로와 50피트 이상 떨어져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드라이브스루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교통 상황을 고려하는 매장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스타벅스 강동구청 드라이브스루점이나 강동암사 드라이브스루점은 진입로를 건물 후면에 설치했다. 지난해 3월부터는 어르신 통행안전 관리원을 드라이브스루 매장에 배치해 보행자의 안전을 고려했다. 스타벅스코리아 관계자는 “다른 도심의 드라이브스루와 비교하면 진입 차량의 대기공간이 약 2배로 늘어나는 효과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국맥도날드는 도심에 있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의 진입로를 대부분 건물 후면이나 측면에 배치하고 있다. 맥도날드 관계자는 “대기 차량이 급증할 때 웬만하면 매장 주차장 부지 안에 머물 수 있는 구조로 건설하는 데 신경 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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