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우한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국내 과학계 “글쎄”

  • 뉴스1
  • 입력 2020년 9월 18일 06시 17분


정지된 옌리멍 박사의 트위터 계정 갈무리. 2020.9.17/뉴스1
정지된 옌리멍 박사의 트위터 계정 갈무리. 2020.9.17/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한연구소에서 만들어졌다.”

홍콩 출신의 바이러스 학자인 옌리멍 박사의 이같은 주장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옌 박사는 홍콩대학교 공중보건대 연구실에서 일하던 중 올해 4월 미국으로 도피, 지난 14일 개방형 정보 플랫폼 ‘제노도’(zenodo)에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에이포(A4) 용지 26페이지 분량의 논문을 게재해 주목받았다.

하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서구권 전문가들이 속속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17일 <뉴스1>이 접촉한 복수의 국내 과학전문가들도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다. 다만 일부에선 옌 박사의 주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논문 통해 근거 제시…앞서 트럼프 등 의혹 제기

옌 박사 연구진의 논문에 따르면 이번 코로나19(SARS-CoV-2)는 자연발생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고 박쥐 코로나바이러스를 토대로 6개월 내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코로나19의 유전자 서열이 중국 충칭시 제3군 의과대학 연구소 및 난징시의 난징사령부의학연구소에서 발견된 박쥐 코로나바이러스(ZC45, ZXC21) 염기서열과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즉, 두 개의 바이러스를 기초로 코로나19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연구진은 바이러스의 인체 침투에 관여하는 스파이크 단백질(바이러스 돌기 단백질) 내 수용체결합모티프(RBM)가 코로나19의 경우, 2003년 유행한 사스 바이러스와 유사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해당 부위가 유전적으로 조작됐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연구진은 코로나19의 스파이크 단백질에는 퓨린분절부위라는 바이러스 감염을 향상시키는 부위가 있는데, 이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코로나바이러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인 만큼 인위적으로 삽입된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코로나19는 자연발생이 아니라 우한연구소에서 발원했다’는 주장은 옌 박사가 처음 내놓은 것은 아니다.

올해 1월 금융 전문 파워블로거 ‘제로 헤지’(Zero Hedge)를 비롯해 4월에는 프랑스의 바이러스 학자인 뤼크 몽타니에 박사가 방송을 통해 “코로나19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뤼크 몽타니에 박사는 에이즈 바이러스(HIV)를 발견해 200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한 이력이 있는 저명한 학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지난 4월 “증거를 봤다”며 우한연구소가 코로나19의 유래라고 언급한 바 있다.

5월 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이런 주장에 힘을 실었으나 당시 영미권 주요국들의 기밀정보 동맹체인 ‘파이브 아이즈’(미국·영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에서 ‘코로나19는 우한연구소가 아닌 재래시장에서 기원됐다’는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단락되는 분위기를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코로나19 발생 초기인 올해 초 ‘코로나19는 중국 정부가 개발하던 대량살상 생화학무기로, 연구소에서 실수로 누출된 것’이라는 의혹이 SNS, 유튜브 등을 통해 떠돌았으나 ‘가짜뉴스’로 일축됐다.

◇대다수 전문가 “증거 부족” 지적 속 “있을수 있는 일”

옌 박사의 주장으로 또다시 불붙은 ‘코로나19 우한연구소 기원’ 논란에 국내 전문가들 대다수는 “증거가 부족해 보인다”며 선을 그었다.

김태형 테라젠이텍스 바이오연구소 상무는 이날 <뉴스1>과의 통화에서 “옌 박사가 주장한 퓨린분절부위라고 하는 서열은 자연상태의 바이러스에서도 발견되고 있어 이미 여러 차례 언급이 됐던 사안”이라며 “논문의 근거가 많이 약하다”고 말했다.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이자 과학 베스트셀러 ‘과학자가 되는 방법’의 저자인 남궁석 박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뜯어고쳐 SARS-CoV-2(코로나19)를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옌 박사 연구진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기도 했다.

그는 그러면서 “SARS-CoV-2를 인공적으로 만드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사실 그런 것을 해야 할 목적도 모르겠다”며 “인공적으로 (바이러스를) 배양한다면 변화된 바이러스를 얻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최소 수십년은 걸릴 것이다. 바이러스를 개조해 우리가 원하는 능력을 만들게 하는 것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전문가들도 “옌 박사가 우한연구소에서 인위적으로 바이러스를 만들었다고 볼 만한 명확한 증거 제시를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어리뷰(동료 검증)를 거치지 않은 만큼 한마디로 자기 주장의 논문인 것”이라며 “더구나 현 단계에서의 과학자들은 이 문제(우한연구소발)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옌 박사는 향후 추가 논문도 내놓을 계획으로 알려져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아 보인다. 그를 비롯해 이번 연구에 참여한 동료 과학자들은 ‘더 소사이어티’로 불리는 미국 내 반중 단체 ‘법률 사회 및 법치 재단’(Rule of Law Society & Rule of Law Foundation·ROLS) 소속으로 알려져 ‘연구의 신뢰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옌 박사의 주장과 관련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과학적 근거도 없는 소문 같은 이야기”라고 선을 그었고 트위터는 옌 박사의 계정을 중지시켰다.

페이스북도 옌 박사의 인터뷰 영상을 올린 미국 폭스뉴스 프로그램 ‘터커 칼슨 투나잇’(Tucker Carlson Tonight) 공식 계정에 ‘허위 정보’를 경고하는 표시를 달았다.

터커 칼슨 투나잇 측은 이에 대해 “페이스북이 코로나바이러스 내부고발자에 대한 우리 게시물을 볼 수 없게 하려고 노력 중”이라며 “이것은 검열”(This is censorship)이라고 반발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한편 옌 박사의 주장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국내 한 전문가는 “면역반응을 정교하게 피해가면서 왕성한 증식을 일으키는 코로나19에 대해 주변 전문가들과 ‘어떻게 이런 바이러스가 나타날 수 있냐’는 말을 최근까지도 해왔다”며 “사실 치료제나 백신을 만들기 위해 재조합바이러스를 만드는 일은 이상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옌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유전자 서열이 통째로 삽입돼 있다면 이런 일은 흔한 일은 아닌 것”이라며 “개인적으로는 옌 박사의 주장에 완전히 부정적이지는 않고 ‘이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