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노후자금 752조 원을 운용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이 마약류인 대마초에 손을 대 경찰 수사를 받고 있다. 운용자산 기준 세계 3위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올해 1월부터 7개월간 이사장 공백 상태에 있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직원들의 무더기 이탈에 일탈까지 겹치자 국민연금 조직 전반에 대한 진단과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30대 동갑내기 4명 대마초 흡입”
18일 경찰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대체투자 담당 책임운용역 A 씨와 전임 운용역 B 씨 등 운용역 4명이 대마초 흡입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됐다. 운용역은 증권사의 펀드매니저 같은 역할을 한다.
경찰에 따르면 인프라투자실 소속 33세 동갑내기인 이들은 2∼6월 피의자 중 한 명이 거주하는 전북 전주시의 한 오피스텔에서 여러 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를 받고 있다. 대마초는 이들 중 한 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연금은 7월 중순 대마초 흡입 혐의를 적발하고 이 4명을 관할 경찰서에 고발한 뒤 이달 9일 전원 해임했다. A 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대마초를 피운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이들의 소변과 모발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 분석한 결과 2명이 양성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분석 결과는 이달 말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국과수 분석 결과를 보고 추가 조사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대마초를 피운 시기는 전임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총선 출마를 이유로 1월 중도 사퇴해 이사장 자리가 공석이었던 때다. 지난달 31일 21대 총선에서 낙선한 김용진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이사장으로 임명됐다.
○ 인력 유출과 기강 해이 심각
국민연금 측은 “전 직원 공직기강 교육 실시 및 위반자에 대한 퇴출 기준 강화 등 고강도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젊은 직원들이 대마초에까지 손댈 정도로 국민연금의 조직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앞서 2018년에는 기금운용본부 직원 114명이 2013∼2017년 해외 위탁운용사들로부터 해외 연수비용 총 8억4700만 원을 지원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2017년엔 퇴직예정자 3명이 기금운용과 관련한 기밀정보를 개인 컴퓨터와 외장하드 등에 저장한 것이 드러났다. 2012∼2016년 국민연금에서 발생한 음주운전, 성 관련 비위, 금품수수, 기밀 유출 등 비위행위 57건 중 54건에 대한 징계 수준은 견책과 감봉 및 정직 1∼3개월에 불과했다.
인력 유출도 심각하다. 다음 달 8일 임기가 끝나는 안효준 기금운용본부장(CIO)은 강면욱 전 본부장이 사퇴한 후 1년 3개월간 공석으로 남겨졌던 자리에 임명됐다. 그의 후임 논의는 아직 공론화되지 않았다. 기금운용역 정원은 288명이지만 현재 인원은 260여 명으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20명, 2017∼2018년 2년간 총 54명이 퇴사했다. 국민연금 전직 고위 관계자는 “그나마 있는 직원들이라도 나가버릴까 우려해 엄격한 잣대로 직원들을 관리하기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직원들이 국민 돈을 굴린다는 소명의식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조직 쇄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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