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 2020]
명절 예법 오해와 진실
유교에선 돌아가신 날만 기제사… 차례상, 송편-과일 한두개면 충분
추석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이유로 ‘조상을 모시기 위함’을 꼽는 이가 많다. 명절에 제사나 차례를 지내지 않는 걸 조상에 대한 큰 불효라고 여기는 탓이다.
하지만 유교 전문가들의 설명은 다르다. 일단 ‘명절 제사’란 개념 자체가 오해라는 것. 유교에는 조상이 돌아가신 기일에 지내는 기제사만 있을 뿐 명절 제사는 없다. 제철 음식을 후손들만 먹는 것이 죄송스러워 조상께 음식을 올리는 ‘차례’만 있을 뿐이다. 그래서 차례상 규모도 크지 않았다. 단순했던 차례상이 제사상 수준으로 복잡해진 것은 조선 후기 너도나도 서로 양반이라고 경쟁을 벌이다 생긴 현상이란 해석이 많다.
추석 차례상은 송편과 제철 과일 1, 2종류면 충분하다. 차례상에서 ‘조율이시’(대추·밤·배·감)나 ‘홍동백서’(붉은색 음식은 동쪽, 흰색 음식은 서쪽에 놓음)를 따지는 건 예법을 과하게 해석한 것이다. 예서에는 ‘과(果)’라고만 나와 있을 뿐 종류나 순서의 언급이 없다.
오랜 명문가일수록 제사와 차례를 성대히 지낼 것이란 것도 오해다. 오히려 일찌감치 시대 흐름에 맞춰 간소화하고 여성의 명절 노동을 줄이려 신경 쓴 곳이 많다. 석주 이상룡 선생 집안뿐 아니라 조선 대표 성리학자인 명재 윤증, 퇴계 이황 등 여러 종가에 ‘제사상을 간소하게 차리라’는 지침이 전해 내려온다. 명재 종가는 제사상 크기가 가로 99cm, 세로 68cm로 정해졌다. 작은 밥상 정도 크기라 음식을 많이 올릴 수가 없다. ‘부녀자들의 수고가 크고 사치스러운 유밀과(약과)는 올리지 말라. 기름을 쓰는 전도 올리지 말라’ 등의 지침도 있다. 제사에서 두 번째 술잔은 반드시 맏며느리가 올리도록 해 여성의 수고와 권위를 인정하는 종가도 있다.
선조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현실에 맞게 예법을 해석했다. △형제간에 돌아가며 제사를 지내는 ‘윤회봉사’ △형제가 제사 음식을 각자 준비해 오는 ‘분할봉사’ △사위가 장인 장모의 제사를 지내거나, 딸과 외손이 제사를 잇는 ‘외손봉사’ 등이 그 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관계자는 “전통은 시대와 집안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며 “모든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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