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유행 속에서 맞는 첫 추석. 모두가 ‘언택트 명절’을 보내야 하지만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 명절 모임이나 차례 때는 여러 사람이 실내에 모여 마스크를 벗어둔 채 대화하고 식사한다. 감염에 가장 취약한 상황이다. 선조들이 전염병이 돌거나 집에 환자가 있으면 차례와 제사를 생략한 이유다.
○ 아픈 사람 있다면? ‘차례 생략’이 예법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모 씨(40)는 추석을 앞두고 남다른 고민 중이다. 지난해 큰 수술을 받은 시어머니가 예년 명절처럼 친척 30여 명을 모아 차례를 지내려 하기 때문이다. 명절 준비가 힘들지만 몸이 약해진 시어머니가 행여 코로나19에 노출될까 걱정이다. 하지만 평생 제사와 차례를 지내 온 시어머니는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과 조상에 대한 예를 차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의무감을 안고 있다. 아픈 사람이 있을수록 차례를 지내지 않으면 화가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김 씨 같은 고민, 혹은 김 씨의 시어머니 같은 부담감을 가진 이들이 많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는데 차례를 꼭 지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부쩍 많이 올라온다. 평소라면 집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병문안을 갈 수 있겠지만 요즘엔 안 찾아가는 게 배려다. 특히 팬데믹(pandemic·전염병 대유행) 상황에선 집안에 아픈 사람이 있을수록 더욱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게 방역 전문가들의 메시지다.
실제로 제사와 차례를 중시하던 조상들도 전염병이 돌면 명절 모임과 행사를 중단했다. 조상들이 쓴 일지나 기록에선 위급한 시국에 차례와 기제사를 건너뛰었다는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안동 하회마을의 류의목이 지은 ‘하와일록’(1798년)에는 “마마(천연두)가 극성을 부려 마을에서 의논해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그 시절 천연두는 지금의 코로나19만큼이나 극복하기 어려운 역병으로 통했다. 조상들은 천연두를 옮기는 ‘두창신’이라는 귀신이 질투가 많아 조상의 제사를 지내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했다. 유새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미신이긴 하지만 그 배경에는 전염병을 겪으며 쌓인 방역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기저질환이 있는 어르신뿐 아니라 자녀, 손주 누구든 아프거나 건강에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만남 자체를 자제해야 한다. 특히 차례 준비를 도맡는 이의 건강이 좋지 못하면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항암치료를 받았던 며느리를 위해 올해 처음으로 차례를 지내지 않기로 결심한 김모 씨(77)는 “성묘도 차례도 모두 아픈 며느리에게 부담될까 봐 건너뛰기로 했다”며 “조상님도 우리 가족이 건강한 것을 바라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마스크를 벗고 대화하고 음식을 나누는 가정 내에선 감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며 “가족 중 어린아이와 임산부 등이 있다면 명절 만남은 자제하라”고 조언했다.
○ 아쉽다면 ‘온라인 차례·성묘’ 어떨까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할 수도 있다. 특히 평생 무슨 일이 있어도 명절 행사를 걸러본 적이 없는 어르신들 입장에선 차례와 성묘를 쉰다는 게 어려운 일이다. 이런 문화를 고려해 보건복지부는 21일부터 ‘e하늘장사정보시스템’을 열었다. 온라인으로 추모와 성묘를 할 수 있는 서비스다.
온라인이라는 방식이 생소할 수 있지만 고인을 기리고 가족끼리 정을 나누는 추모의 본질은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사이트에 접속해 고인의 이름과 사진을 등록하고, 원하는 분향과 헌화 품목을 골라 차례상을 차릴 수 있다. ‘할아버지 그립습니다. 사랑해요’와 같은 메시지도 남길 수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족들이 완성된 차례상을 공유하고 서로 추모와 안부 메시지를 남기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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