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개념이었던 시간과 공간…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으로 깨져
수학자 민코프스키는 최초로 과거∼미래를 원뿔 형태로 표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많은 영화가 개봉 일정을 미루거나 개봉 통로를 바꾸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신작 ‘테넷’은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으다가 8월 말에 개봉되었습니다. 테넷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미래의 공격에 맞서 현재 진행 중인 과거를 바꾸는 이야기를 그리는 영화라고 소개합니다. 한 번 보고는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도 있고, 가상의 물리학 개념이 현실에 전개된다면 어떻게 되는지 작은 것 하나하나의 상상력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영화 테넷에 나오는 수학적 요소도 한 번 살펴볼까요.
서영: 3차원에서 사는 우리가 4차원의 도형을 상상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들어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시간 축은 사실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생각했는데, 영화에서 보면 시간이 역으로 흐르기도 하고 특정 과거 시점으로 가기도 하네요.
엄마: 영화에 현대 물리의 개념이 많이 들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단다. 수학에서는 2차원과 3차원의 관계를 확장해 일관성 있게 3차원과 4차원의 관계를 유추하여 논리적으로 n차원까지 확장하고 있단다. 물리에서는 차원을 다룰 때 시간과 공간을 함께 생각하고 역열역학적 관점이 같이 들어간단다. 우리는 수학적 요소만 조금 살펴볼까?
○변환
영화에 자주 등장하고 그 밑바탕으로 깔고 있는 것이 ‘변환(Transformation)’입니다. 변환은 표현하는 영역을 바꿔 달리 표현한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공간에서 저 공간으로 달리 표현할 수 있으나, 내용상으로는 동등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변환을 이용하면 해석이 쉬워지거나 취급이 단순해지는 등 여러 가지 장점이 있기에 다양하게 활용됩니다. 변환은 수학의 분야에 따라 함수(Function), 사상(Mapping)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우리 교육과정에서는 함수라는 용어로 다루고 있지요. 함수를 생각하면 변환의 이해가 좀 쉽겠지요.
영화에서는 물리학에서 입자를 반입자로 바꾸는 변환 C, 거울과 같이 공간을 반전시키는 변환 P, 시간을 뒤집는 변환 T가 등장합니다. 물리에서는 모든 물리적 상호작용에 C, P, T변환을 동시에 가하면 물리적 원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CPT 정리가 알려져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는 ‘인버전(inversion)’이란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는 고등학교 때 다루는 ‘역함수(inverse function)’의 개념으로 생각하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역함수는 변수와 함숫값을 서로 뒤바꿔 얻는 함수입니다. 즉 역함수의 대응 규칙에서 원래의 출력 값은 원래의 입력 값에 대응합니다. 영화에서 엔트로피의 법칙을 이용해 과거, 현재, 미래를 넘나들 수 있는 인버전 기술이 미래에 개발된 것이고, 현재에서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가기 위해 회전문을 통과하는 과정이 인버전인 것이지요.
○광원뿔(빛원뿔)
예전에는 시간은 공간과 더불어 절대적인 값으로 여겨졌었습니다. 즉 모두에게 동일한 과거, 현재, 미래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물리학에서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의해 절대적 시공간은 허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과거, 현재, 미래의 모습이 선형의 모습이 아니라 원뿔 형태를 이루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시공간 구조는 시공간의 기하학을 최초로 다룬 수학자 헤르만 민코프스키의 이름을 따서 ‘민코프스키 시공간’이라고 불립니다 [그림1 참조].
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각각의 원뿔을 광원뿔 또는 빛원뿔이라고 부릅니다. 광원뿔에는 원뿔의 점을 기준으로 한 사건의 과거와 미래가 양쪽의 원뿔로 표현돼 있습니다. 왜 원뿔 모양이냐고요? 점 P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사건을 상상해 봅시다 [그림2 참조]. 빛은 시공간의 임의의 점 P를 지나고 공간상의 여러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팽창하는 나선형 형태로 전파됩니다. 이것이 2차원 공간(평면)에서는 확장되는 원처럼 보일 것입니다. 따라서 광원뿔은 시공간에서 점 P를 지나는 빛의 흔적을 표현한 것입니다.
우리는 시공간의 원뿔을 통과해 지나간 흔적을 남기고 이 흔적을 세계선이라고 합니다. 질량이 있는 입자의 세계선은 언제나 원뿔 내부를 통과한다고 합니다. 또 세계선의 두 점 사이의 시간 간격도 계산할 수 있습니다. 간혹 극단적으로 닫힌 시간꼴 곡선이 형성되면 하나의 사건에서 출발한 신호가 미래를 거처 다시 과거로 진행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즉 이전의 과거가 미래가 되는 것이지요. 민코프스키 시공간이 이런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뿔이 등장한 김에 원뿔의 재미있는 특징을 살펴봅시다. 원뿔은 밑면과 평행한 단면으로 자르면 앞서 살펴본 광원뿔의 단면처럼 원이 나타날 것이고, 모선과 평행하게 자르면 포물선이 나타납니다. 또 밑면과 모선이 이루는 각도보다 더 큰 각도의 평면으로 자르면 쌍곡선이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도형을 식으로 나타내면 이차식으로 표현되기에 이차곡선이라고 하고 고등학교 때 자세히 다룹니다.
○마방진
테넷 리뷰에서 많이 언급되는 재미난 성질 중 하나가 사토르 마방진입니다. 마방진은 본래 n×n개의 수를 가로, 세로, 대각선 방향의 수를 더하면 모두 같은 값이 나오도록 배열한 것입니다.
사토르 마방진은 고대 로마에서 만들어진 5×5의 마방진으로 가로로 읽으나 세로로 읽으나 똑같이 읽히는 단어나 문장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림3 참조]. 라틴어로서 완벽한 대칭 속에서 잡귀를 쫓고 행운을 불러온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재미있게도 영화 제목과 등장인물, 첫 장면 등에 사토르 마방진에 있는 단어들이 모두 쓰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외부 활동이나 문화 활동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영화관에 가는 대신에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영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온택트 문화 활동’이 늘어나는 환경이죠. 일례로 야구장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길어지면서 온택트 야구수학이란 콘텐츠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온택트 환경에서 수학을 통해 다양한 문화를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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