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관청들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에도 외산 헬기를 선호하면서 헬기 국산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 소방본부는 관용헬기 도입 과정에서 불합리한 입찰 기준을 제시하며 수리온 도입을 원천 배제하고 있다. 헬기 국산화를 위해서라도 관용헬기 수급처의 일괄구매, 최고가치 낙찰제 도입 등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배보다 배꼽 큰 외산헬기 고집에…국산은 ‘입찰 배제’
24일 각 기관별 헬기 보유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내 수요관청이 보유한 121대 중 수리온은 12대에 불과하다. 외산 일색으로 개발 7년이 지난 수리온의 관청 사용비중은 9%에 그친다.
수리온은 KAI가 중심이 돼 민관합동으로 2013년 개발을 완료한 국산 헬기다. 개발에 1조3000억원이 투입됐다. 범용성이 높아 의료수송, 산림 진화, 해양 정찰 등 여러 공공분야에서 파생적 활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노후화된 러시아 헬기를 운용하는 페루와 동남아시아 일부 국가는 수리온 도입에 긍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무기 수출의 구매기준인 내수판매 실적 부족이 수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관청용 헬기보급이 미진한 게 원인이다. 방산 제품은 수출상대국에서 국내 판매실적을 요구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내수판매 실적 부진은 국내 관청들이 헬기 입찰에서 수리온을 원천 배제한 영향이 크다. 국토부 형식증명을 입찰조건으로 삼거나 기본규격 항속거리인 500㎞ 이상을 훌쩍 웃도는 기준을 제시하는 식이다.
실제 올해 전북소방은 입찰 가능한 항속거리를 700㎞ 이상으로 제한하며 수리온(최대이륙 중량시 680㎞) 참여를 사실상 배제했다. 여기에 이탈리아 레오나르도사 독자 기술인 주회전익거리측정장비까지 입찰 조건에 넣어 국산헬기가 들어갈 길을 아예 틀어막았다.
국산헬기를 배제하고 있는 관청들이 가장 많이 쓰는 기종은 15인승(조종석 제외) 러시아제 카모프-32(42대)다. 1990년대부터 해외에 판매된 해당 기종 가격은 100억원 안팎이다. 표면만 놓고 보면 대당 200억원 정도로 알려진 수리온보다 도입이 유리하다.
그런데 유지보수 비용과 성능을 고려하면 외산헬기 도입으로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카모프-32의 경우 수리온과 비교해 부품 교체주기가 10분의 1 정도로 짧은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 교체는 모듈을 통째로 바꿔야하는 방식이어서 유지관리비가 갈수록 많이 들게 돼 있다.
다른 외산 헬기와 비교해도 국산헬기가 유지·관리에서 더 낫다. 강원소방이 도입한 AW-139는 외주검사(외주비용+부품비)에만 연간 4억4565만원이 들어간다. 수리온은 3분의 1 수준인 1억6500만원에 불과하다.
지방 소방본부들이 카모프-32 다음으로 선호하는 기종들의 한 대당 외주검사 비용은 각각 EC-225 13억3000만원, BK-117 3억6300만원, AS-365 3억5000만원이다. 모두 수리온 대비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외주검사는 유지·관리의 일부분에 불과해 총 유지비용은 훨씬 더 많이 소요된다.
운용유지비가 공개된 소방청 운용 헬기 17대(5종)의 연간 유지비는 342억원으로 조사됐다. 이를 국산으로 통일하면 99억원까지 줄일 수 있다.
더욱이 외산 헬기는 후속지원 등이 어려워 운용에서도 불리하다. 중앙119 보유 외산헬기 5대 중 2대는 후속지원 문제로 운항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배보다 배꼽이 큰 외산 헬기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가격 외에 유지관리 및 성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 최고가치 낙찰제 등의 도입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기관별 낱개 구매…입찰 투명성 떨어지고 비용에도 불리
청, 본부단위로 이뤄지던 구매를 일정 가이드라인에 따라 중앙 부처가 일괄 구매하는 게 헬기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찰, 해경, 방재기관들이 따로 따로 구매하다 보니 가성비를 높일 수 있는 수요압력을 못 만들고 있다는 지적에서다.
입찰을 개별 기관들이 필요할 때 제각각 진행하다보니 구매절차의 투명성도 도마에 오른다. 분명하지 않은 이유로 요구하는 성능이나 가격에 제한을 둘 경우 시비가 일 가능성이 많다. 게다가 기종이 수십개로 난립하면서 정비 보수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헬기는 한번 플랫폼이 개발되면 군용은 물론 환자수송, 지역 정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 이같은 범용성을 감안하면 공동구매로 기종을 단일화하면 구매비용도 줄이고 정비보수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현재 청 단위 정부조직인 산림청과 경찰청은 조달청을 통해 구매, 지방기관에 배분하고 있지만 소방청은 지자체별로 별도 입찰을 실시하고 있다.
각 소방본부가 제각각 헬기를 구매하다 보니 같은 기종 구입에서도 예산 누수가 발생한다. AW-139를 도입한 중앙119는 이에 필요한 예산이 23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때 헬기 요구장비로 기상탐지레이더, 응급의료장비, 위성전화기 등을 필수로 넣었다.
반면 전남소방은 같은 예산을 반영하고도 이들 요구 장비를 필수로 넣지 않았다. 동일 용도, 동일 기종을 샀는데 장비에 차이가 발생했다. 같은 돈을 주고 옵션이 뒤처지는 차량을 산 것과 같다.
소방청과 지방소방들이 자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해 진행한 용역에서도 동일기종 부품공유 및 공동구매가 더 유리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도 제도 개선 없이 국산 헬기 입찰을 원천 배제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청단위, 본부단위로 이뤄지던 구매를 4곳 기관 모두의 일괄구매로 확대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경우 수리온을 포함, 구입기종의 가성비를 더욱 높일 수 있다. 당장은 각 지방본부로 분리된 구매 절차를 소방청이 총괄하는 식으로 제도를 개선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기관들이 각자 낱개로 헬기를 도입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조달청을 통해 각 기관의 도입 수요를 주기적으로 모두 모아 공동구매하는 것이 좋은 기종을 더욱 싸게 구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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