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징역→금고 3년…'살인' 무죄 확정
현장서 차량 스스로 굴러가는 곳 있어
대법 "어두워 정확한 위치 몰랐을 것"
"피해자가 원해서 보험가입 했을수도"
"의심 여지 없을 정도의 증거 있어야"
보험금을 노린 의도적 범행이냐를 두고 하급심 판단이 엇갈린 이른바 ‘금오도 사건’에 대해 살인으로 볼 수 없다고 대법원이 최종 결론냈다.
차량을 밀어 떨어뜨리려면 경사가 없는 위치에 차를 세우고 장애물에 부딪히지 않도록 바퀴를 정렬해야 하는데,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같은 행위가 쉽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가 사망보험에 가입할 때 강요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피고인 역시 그 같은 상품에 가입했다는 점 등도 고려됐다. 이런 점을 근거로 대법원은 살인의 고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25일 법원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전날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사), 자동차매몰 등 혐의로 기소된 박모(52)씨의 상고심에서 금고 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씨는 지난 2018년 12월 전남 여수시 금오도의 한 선착장에서 A씨가 탄 승용차를 밀어 바다에 추락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사건 직전 박씨가 A씨에게 여러 보험상품을 가입시켰고, 그를 살해한 뒤 사망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봤다.
1심 검찰의 공소사실이 인정된다며 A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2심은 이 같은 판단을 뒤집었다.
검찰은 박씨가 차량의 기어를 중립(N)으로 놓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잠그지 않은 뒤, A씨가 탄 차량을 밀어버린 것으로 의심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사고 현장에서 A씨가 타고 있던 같은 차량으로 실험을 했다. 차량의 기어는 중립(N)으로 조절하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았다. 부딪힌 난간으로부터 0.5m에서 1.5m에 이르는 장소에서 차량이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는지 확인한 것이다.
그 결과 난간으로부터 1.5m까지 멀어져야 차량이 굴러내려갔으며, 1.2m에 이르는 곳에서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다. 다만 조수석에 탑승한 사람이 1회 상체를 들어올리는 움직임을 취하자 차량이 아래로 향했다. 2심은 이런 점 등을 근거로 박씨가 범행을 고의로 계획하지 않았다고 봤다.
대법원 역시 박씨가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볼 만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우선 재판부는 박씨가 차량이 스스로 내려가지 않는, 즉 난간으로부터 0.5m 떨어진 위치를 정확히 알고 그곳에 정차시키지 못했을 것으로 봤다. 사건은 밤 11시께 발생했으며 아무런 조명이 없어 정차 위치를 파악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차량을 바다로 추락시키기 위해서는 선착장 왼편에 있는 웅덩이와 돌 사이를 통과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차량이 일정하게 굴러갈 수 있도록 차체 및 바퀴의 방향을 정렬했어야 하지만 그 역시 현실적으로 가능하냐는 게 재판부의 지적이다.
사고 차량의 기어 조작 방식이 박씨가 기존에 몰던 것과 다르다는 근거도 언급됐다. 해당 차량의 기어를 전진(D) 상태에서 주차(P) 상태로 바꾸려면, 봉을 중립(N) 위치까지 한 단계 올린 다음 오른쪽으로 밀고 다시 위로 올려야 한다고 한다. 재판부는 기어 조작에 능숙하지 못한 박씨가 난간에 갑자기 충돌해 당황했을 것이라고 봤다.
박씨의 강요로 A씨가 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는 정황도 거론됐다. A씨는 2개의 보험계약을 맺으며 사망보험금을 최대로 늘렸는데, 해당 상품들은 사망담보를 늘려도 추가적으로 부담할 보험료 액수가 미미했다는 게 재판부 설명이다. 박씨 역시 A씨와 만나기 전부터 사망 담보 한도액을 최대로 늘려 보험을 가입한 것도 재판부의 판단을 뒷받침했다.
이번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범행의 고의가 의심되는 상황에서는 유죄로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의 판례를 재확인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형사재판에서 범죄사실의 인정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의 확신을 갖게 하는 증명력을 가진 엄격한 증거에 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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