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업계 "상온 노출 사건으로 유효성에 문제 생길 가능성 적어"
"전량 폐기 주장은 납득 안돼…조사 결과 기다려야"
가격 중심 조달 계약과 물류 관리 시스템 정비 시급
코로나19와 독감의 동시 유행에 대한 우려 속에 독감 백신의 무료접종이 중단되자 유료접종이라도 서두르는 분위기가 거세다.
전문가들과 업계는 지나친 공포 분위기 확산을 경계했다. 오히려 조기 접종보다 ‘적기 접종’이 더 중요해 차분히 정부의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앞서 질병관리청은 지난 22일 백신 유통과정에서 일어난 문제로 신성약품의 독감 백신 500만 도즈(500만 명 분)의 접종이 전격 중단됐다고 밝혔다. 백신을 수송차량에 옮기는 과정에서 섭씨 2~8도에서 보관해야 한다는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상온에 노출된 정황이 파악됐다.
이로 인해 실제로 백신의 유효성·안전성이 타격을 받았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의 의견이다.
강진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모든 백신은 제조사가 상온 25도(가속시험)와 더운 37도(가혹시험)에서 효과가 잘 유지되는지 확인한다”며 “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산성도(PH), 오염도, 미생물 개입, 독성을 검사해 출하를 승인한다. 개인적으론 이번 사건으로 백신의 효과가 떨어지는 유효성 측면의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모든 독감백신은 약이 주사기에 미리 충전돼 있는 프리필드 시린지로, 무균 상태로 충전돼 있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적기 접종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설명이다. 10~12월 초순까지가 적기 접종 기간이지만 올해는 코로나19와 독감의 ‘트윈데믹’ 우려로 작년보다 할단 빨리 무료접종을 시작했다. 지난해 국가 독감 백신 무료 접종은 10월 15일에 시작됐다.
강 교수는 “조기 접종보다 적기 접종이 훨씬 중요하다”며 “독감백신을 맞아도 방어력이 오래 가지 않는다. 전문가들은 최대 4개월 유지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매년 독감 발생 시기는 다르다. 일찍 접종했는데 유행시기가 1~2월이면 오히려 불리할 수 있다. 10~12월 초순까지의 적기 접종 시기에만 접종하면 된다. 국민의 불안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신성약품이 납품한 500만 명분을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전량 폐기는 말이 안 된다. 제약사들은 저마다 최소 한 달 이상 실온에서 유효성·안전성이 유지된다는 데이터를 갖고 있다. 또 독감백신은 사백신이라, 생백신보다 열에 의한 민감도가 크지 않다”며 “정부의 샘플링 조사 결과를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교수 역시 “조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전량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샘플링 검사 범위를 넓혀 안전한 자료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단, 이번 사건으로 도마 위에 오른 물류 체계와 정부 조달 계약의 문제점에 대한 개선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국가 무료접종 백신의 공급은 백신 유통업체가 정부의 입찰 계약을 따낸 뒤 제약사와 협의해 계약 물량을 맞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올해는 정부의 낮은 입찰가격 제시로 계약이 네 차례나 유찰됐다. 대규모 백신 유통을 처음 맡은 신성약품이 결국 낙찰됐지만, 네 차례 유찰된 탓에 신성약품 마저 무료접종 일정을 맞추기 빠듯했다. 정부가 공급가격(입찰가격)을 낮추는 것에만 집중해 유통업체의 전문성, 경험, 교육 여부를 제대로 살피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김우주 교수는 “백신 유통의 생명은 콜드체인”이라며 “단백질이 변성되면 안전성·유효성이 모두 깨질 수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여러 백신의 효과가 떨어지는 게 콜드체인에서 비롯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조달 계약 체계, 유통 관리 체계 모두 개선이 시급하다”고 피력했다.
업계 관계자는 “아직도 검체 검사할 때 기차나 택배로 운송하는 일이 많다”며 “이번 기회에 물류 체계를 반드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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