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이씨(廣州李氏) 석담(石潭) 이윤우(조선시대 문신·1569∼1634) 선생의 16대 종손 이병구 씨(68)는 이번 추석을 앞두고 친인척들에게 이런 내용의 전화를 돌렸다. 명절 때면 경북 칠곡군 지천면에 있는 이 씨의 종갓집으로 종친 50여 명이 찾아오는데 이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추석 방문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 씨는 종부인 아내 이현숙 씨(68)와 함께 평소 명절 때마다 사당에 모신 열 분의 조상을 위해 다섯 상의 차례 음식을 준비해 왔다. 차례를 마친 후 50여 명의 종친들과 집 안에서 식사를 하는 게 이 집의 전통이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감염 위험이 커지자 이 씨는 종친들이 종갓집을 찾아오지 않도록 당부 전화를 돌리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 씨는 이 같은 요청에도 일부 종친들이 집으로 찾아올 것에 대비해 절충안도 마련했다. 제사에 쓴 음식으로 음복(飮福) 도시락(사진)을 준비하기로 한 것이다. 이 씨는 27일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화로 당부를 드리긴 했지만 몇몇 종친들이 조상들께 예를 갖추기 위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위험 때문에 음식을 차려 드릴 수가 없어 각자 집에 돌아가서 드실 수 있게 도시락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추석 아침 차례 때 사용한 과일과 떡, 전 등으로 도시락을 구성할 계획이다. 25일에 열린 제사 때도 종친 31명이 이 씨의 종갓집으로 찾아와 도시락을 제공했다고 한다. 이 씨는 “그때도 전화를 돌려 불참을 당부드렸는데 많이 찾아오셨다. 아내와 함께 종친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한 음복 도시락을 제공했는데 반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조선시대에도 역병이 돌면 아무리 명절 때여도 가족이 모이지 않았다고 한다. 하늘에 계신 조상들께서도 이번 상황은 이해해주실 테니 종친들 모두 합심해 코로나19를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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