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 안 주는 ‘나쁜 아빠들’ 이렇게 바로잡자 [박성민의 더블케어]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일 11시 52분


올 7월 김태희 씨의 아들 A군(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올 7월 김태희 씨의 아들 A군(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아동학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하고 있다.

#1. 김태희 씨(44)의 아들 A군(13)은 올해 7월 양육비를 주지 않는 친아버지를 아동학대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김 씨 남편은 2017년 이혼 뒤 양육비를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적반하장으로 올 3월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찾아간 김 씨를 주거침입으로 신고하기도 했다. 아들은 아동복지법을 찾아보며 아버지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일일이 따졌다. “아빠는 나를 유기, 방임한거다. 정서적 학대나 마찬가지다”라고 말하는 아들을 볼 때마다 김 씨의 마음도 미어진다.
1년 6개월째 전 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배성은 씨와 둘째 아들.
1년 6개월째 전 남편에게서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배성은 씨와 둘째 아들.

#2. 5년 전 이혼한 배성은 씨(40)의 전 남편은 지난해 3월부터 갑자기 양육비 지급을 중단했다. 전화도 수신을 차단해 연락할 방법이 없다. 지금까지 못 받은 양육비는 월 120만 원씩 약 2000만 원에 이른다. 최근엔 중증 자폐증을 앓는 큰 아들(9)을 돌보느라 직장도 그만뒀다. 월 116만 원의 생계급여가 수입의 전부다. 딸이 사는 모습을 못마땅해 하는 부모님과도 연락이 거의 끊겼다. 올 추석도 배 씨는 두 아들을 돌보며 집에 머물 예정이다.

● 양육비 미지급 가정 79%


한국에는 유달리 ‘나쁜 아빠들’이 많다. 이혼 뒤 비양육자가 양육자에게 반드시 지급해야 할 양육비를 재산을 타인 명의로 빼돌리고, 주거지를 숨기면서까지 안 주려는 무책임한 아빠들이다. 한국 남자들만 자녀들에 대한 책임감이 없는 걸까. 문제는 법과 제도다. 양육비 갈등을 단순한 개인 간 채무 관계로 봐 법이 지나치게 간섭할 수 없다는 인식, 양육비 미지급을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 안일함 때문이다.

양육비를 제대로 받는 한부모 가정은 그리 많지 않다. 2018년 여성가족부의 한부모 가정 실태 조사에 따르면 양육비를 정기적으로 지급받거나 일시 지급받은 가정은 16.8%에 불과하다. 73.1%는 전혀 받지 못했고, 5.7%는 헤어진 뒤 초기엔 받다가 최근 들어 지급이 중단됐다.

무책임한 아빠들에게 맞서기 위해 강민서 씨(47)는 ‘양육비 해결 모임(양해모)’를 만들었다. 강 씨 역시 전 남편에게서 양육비 약 2억 원을 받지 못했다. 22년 동안 28번의 소송을 거쳤다. 아들이 돌이 되기 전 헤어진 전 남편에게 지금까지 받은 양육비는 270만 원이 전부다.
양육비 주지 않은 부모를 신상공개 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강민서 양해모 대표
양육비 주지 않은 부모를 신상공개 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강민서 양해모 대표

강 씨의 가장 큰 목표는 ‘아동복지법’ 17조의 개정이다. 아동에게 해서 안 되는 금지 행위에 ‘양육비 미지급’을 포함 시키는 것이다. 강 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대부분은 양육비를 주지 않았을 때 형사 처벌 등 강력한 제재 수단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국과 캐나다, 호주 등에선 양육비를 주지 않으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다. 캐나다는 양육비 연체 기간이 3개월 이상이거나 미지급 금액이 3000캐나다 달러(약 262만 원) 이상이면 여권 사용이 제한된다. 영국처럼 생활에 불편을 느끼도록 운전면허증을 압수하는 국가도 있다.

이는 양육비 미지급은 ‘범죄’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양육비 채무자가 고의적으로 1년 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을 때 채무자의 신원까지 공개한다. 독일은 최대 3년, 프랑스는 최대 2년의 징역형을 선고해 악의적인 채무 불이행을 막는다.

● 긴 소송에 지쳐 양육비 청구 포기

한국은 양육비 채무자들이 법망을 피하기가 수월하다. 국내에서 양육비 지급 명령을 어겼을 때 최후의 수단은 감치명령 신청이다. 최대 30일까지 유치장에 가두는 것이다. 하지만 감치명령의 실제 집행률 20%에도 못 미친다. 감치 집행장의 유효기간은 6개월인데, 그 기간만 피해 다니면 감치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년 출범한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양육자의 소송을 돕고 있지만 작정하고 양육비를 안 주려는 부모를 찾고, 이행을 이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있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이행관리원을 통해 지급된 양육비는 약 666억 원. 하지만 이행률은 35.6%(5715건)로 3명 중 2명은 이행관리원을 거치더라도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이들을 도울 수 있는 건 정부와 국회 뿐이다. 현재 국회엔 양육비 이행 관련 법안 7건이 계류 중이다. 채무자에 대한 형사처벌, 출국금지, 명단공개 등이 담겼다. 다만 이들 법안이 회기 내 통과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국회에서도 유사한 법안이 발의됐지만 ‘과잉입법’일 수 있다는 이유로 폐기 됐기 때문이다.

정지아 변호사는 “한국은 아직 양육비 문제를 일반적인 채무 관계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왜 강력한 이행 수단을 줘야 하느냐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양육비 지급 이행을 법원 명령에만 따라야 하는 제도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긴 소송 기간에 지친 양육자들이 양육비 받는 것을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정인 양육비이행관리원 이행개선부장은 “양육비 지급명령을 통해 채무자의 직장에서 양육비를 받는 경우도 많은데, 채무자가 직장을 옮길 때마다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 구조다. 해외에선 행정적으로 소송 없이 양육비를 지급하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안전연구센터장은 “양육비는 양육자가 필요할 때 지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정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한 뒤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대지급 제도’ 도입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덴마크, 이탈리아 등 유럽 상당수 국가들은 대지급 제도를 운영 중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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