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음주운전으로 아이 잃은 부모 靑청원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17시 49분


“가느다란 주사바늘도 무서워 떨던 아이가 얼마나 아프고 무서웠을까요.”

지난달 6일 서울 서대문구에서 음주운전 사고로 6살 아이를 잃은 아버지 A 씨는 한 마디 한 마디마다 울컥울컥했다. 7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A 씨는 “세상을 떠난 둘째는 만나는 사람 모두 ‘웃음이 예쁘다’며 좋아했다”며 “아이의 웃음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고 죄스럽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돼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한창이던 당시, A 씨의 아이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대낮에 햄버거 가게 앞에서 엄마를 기다리다가 만취한 50대 남성이 몰던 차량이 가로등을 들이받으며 피해를 입었다. 당시 엄마는 햄버거 매장이 밀폐된 공간이라 코로나19로부터 아이를 보호하고 타인도 배려하려 잠시 밖에서 기다리게 했다고 한다.

“발인 날 둘째가 가장 좋아하던 예쁜 줄무늬 셔츠와 면바지를 입혀 떠나보냈습니다. 멋있는 해병대 사령관이 되겠다며 고사리 손으로 신문을 오려 벽에 붙여두던 아이였는데…, 꿈을 이를 수 없게 됐네요.”

7일 찾아간 현장은 아직도 사고 흔적이 남아있었다. 가로등은 교체됐지만, 인근 보도블록은 곳곳이 깨져있었다. 매장 앞엔 시민들이 남긴 꽃다발과 메모가 놓여있었다. “우리 음주운전 없는 나라에서 만나자, 행복해”란 글귀가 적혔다.

매장 앞에서 아이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마주쳤다. 할아버지는 “집에서 손자를 안치한 추모공원까지 매일 간다. 지하철 등을 타고 왕복 5시간이 걸리지만 보고 싶어서…”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어르신은 시민들이 남긴 꽃다발 옆에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고맙습니다’라 쓴 쪽지를 남기기도 했다.

A 씨 부부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가해자의 강력한 처벌을 청원합니다’란 제목으로 “가해자는 운전업계에 종사하며 예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적이 있다. 올바른 처벌이 이뤄져 이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해당 청원은 7일 오후 기준 약 2만3000 명이 동의했다. A 씨는 “가해자는 사고 다음날 조문을 왔을 때도 심하게 술 냄새를 풍기며 왔다”고 분개했다.

“애 엄마는 아직도 자기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어요. 저 역시 아들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은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을 철저히 망가뜨리는 비극이에요. 제발 좀 경각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오승준 인턴기자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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