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낙태에 반대하는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낙태죄 처벌 조항은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는 임신 여성의 의사에 따라 조건 없이 낙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했다. 임신 15∼24주의 경우엔 몇 가지 조건을 붙여 낙태를 허용했다. 임신 24주를 지나서 하는 낙태는 여전히 처벌 대상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강간이나 준강간에 의한 임신, 근친 관계 간 임신 등 일정한 사유가 있을 때에만 24주 이내에서 낙태를 허용한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일었던 현행 모자보건법상 ‘배우자 동의’ 요건은 삭제됐다.
형법 개정안엔 임신 15∼24주인 여성이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심각한 곤경에 처하거나 처할 우려가 있으면 낙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낙태 허용은 현행 모자보건법에는 없는 내용이다.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가 구체적으로 어떤 사례인지는 개정안에 담기지 않았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죄가 헌법 불합치라고 결정하면서 몇 가지 사례를 제시했다. 아이를 키울 만한 소득이 충분하지 않거나 상대 남성과 결혼할 계획이 없는 경우 등이다. 법무부도 헌재가 예로 든 이 같은 명시적 사유에 따라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낙태하려면 보건소 등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아야 한다. 지정 기관에서 임신 유지·종결에 관한 ‘상담사실 확인서’를 발급받은 뒤 24시간의 숙려기간을 거쳐야 한다. 형법 개정안은 법률이 정한 상담 절차에 따라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낙태를 결정할 경우에는 사회적, 경제적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본다. 개정안이 사실상 24주 이내의 낙태를 전부 허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신 15∼24주 여성이라면 지정 기관 상담이 의무화됐을 뿐 본인의 의사에 따라 낙태할 수 있게 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상담은 사회적, 경제적 사유의 사실 관계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지원 절차 안내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고 했다. 헌재의 헌법 불합치 결정에 따라 개정안이 마련된 것이어서 기본적으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미성년자는 보호자 동의 없이도 낙태가 가능해진다. 만 16세 이상 미성년자가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받기를 거부하면 상담사실 확인서만으로 낙태할 수 있다. 16세 미만은 상담사실 확인서 외에 법정 대리인이 없거나 법정 대리인의 폭행·협박 등 학대로 동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공적 자료가 있어야 한다. 의사는 개인적 신념에 따라 낙태 수술을 거부할 수 있게 된다. 그 대신 여성의 낙태 시술 접근성 보장을 위해 의사는 시술 요청을 거부할 경우 그 즉시 임신·출산 상담기관을 임신 여성에게 안내해야 한다.
의료계 일부에서는 기형아 임신의 경우엔 14주 이내에 이를 확인하기 쉽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영식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16∼18주에 태아 주요 장기에서 기형이 발견될 수 있다”며 “여성의 선택권을 넓히는 취지라면 14주로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고 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 회장은 “정부가 올해 한 번도 산부인과의사회와 회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정안을 발표했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먹는 낙태약 품목허가 절차를 내년 1월 1일 전까지 마치기로 했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으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마련되면서 수술에 의한 낙태뿐 아니라 자연 유산을 유도하는 약물 사용도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곧 먹는 낙태약 처방과 관련한 가이드라인 마련에도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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