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전 부산 북구 만덕동 해뜨락요양병원 앞에는 입원 환자 가족들이 몰려와 발을 동동 굴렀다. 김모 씨(56·여)는 떨린 목소리로 통화하며 안절부절 못했다. 김 씨는 “아침에 뉴스 보고 너무 놀라 병원에 전화했는데 받지 않아 달려 왔다”고 말했다. 김 씨의 어머니(88)는 7년 전 치매 등 질환으로 이곳에 입원했다. 김 씨는 “설 앞두고 1월에 뵌 게 마지막이다. 6명 정도 좁은 방에 다닥다닥 침대가 붙어 있었던 거 같아 전염이 쉽게 됐을까 봐 너무 걱정”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최모 씨(62)는 오전에 요양병원으로 전화했더니 어머니(89)의 양성 판정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7월에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비대면 면회한 게 마지막”이라며 “입원한 지 5년 정도 되셨는데 고령이셔서 잘못 되실까봐 너무 불안하다”고 초조해 했다.
이날 오전 9시경 이 요양병원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53명이 나왔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50명이 넘는 인원이 한 집단에서 감염되기는 2월 부산에서 확진자가 나온 이후 처음이다.
요양병원에는 부산시가 확진자를 부산의료원 등으로 이송하기 위해 방역 물품을 들여보내고 있었다. 그 사이 방역 차량이 수시로 병원 주변에 소독약을 뿌려댔다. 병원 한 직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르신들이 많이 계신 곳이라 평소 소독을 철저히 하고 방역 관리를 잘했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병원의 첫 확진자는 13일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여성 간호조무사 A 씨다. 부산시는 이후 직원과 환자, 간병인 등 278명의 전수 검사를 했고 이 과정에서 직원 10명과 환자 42명이 감염된 사실을 확인했다. 확진자 중 48명은 60~80대로 나이가 많거나 치매 등 기저질환을 앓고 있어 위중 환자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 확진된 직원의 가족과 지인 등을 통한 접촉자들이 많아 대규모 추가 감염도 우려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요양병원에는 1층 70명, 2층 68명, 3층 27명이 입원해 있었다. 간호조무사 A 씨는 주로 2층에서 일했는데, 이 층에서만 환자 33명, 직원 11명이 감염됐다. 나머지 9명은 3층에서 나왔다. 확진자 중 3층에 입원한 80대 여성은 12일 사망 후 양성 판정을 받았고 14일 장례까지 치렀다. 숨진 80대 여성 확진자와 간호조무사 A 씨는 7일 밀접 접촉했고 다음 날 오후부터 A 씨는 감염 증상을 보였다. 한글날인 9일 A 씨는 휴무였고 다음날인 10일 집 근처 병원의 선별진료소가 검체 채취했다. 하지만 감염 여부를 판단하는 기관이 11일 휴무라 13일 뒤늦게 확진 판정을 받았다. A 씨는 역학 조사에서 “숨진 환자와 접촉한 뒤 열이 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숨진 80대 여성 확진자를 포함해 이 요양병원에서 한 달 새 8명의 입원 환자가 숨졌다. 3명은 숨진 확진자와 3층의 같은 병실을 사용했고 폐렴, 호흡기 증상 등의 비슷한 증상을 보였다.
안병선 부산시 시민방역추진단장은 “이 요양병원은 3월부터 외부인 면회가 금지돼 있었기 때문에 출퇴근하는 병원 직원에 의한 집단 감염으로 보인다”며 “병원 입원 환자 중 절반 정도가 인지 능력이 떨어져 병원 내 마스크 착용이 쉽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부산시는 이날 이 병원에 대해 코호트(동일집단) 격리 조치를 내렸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부산=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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