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째 대기 중” 첫날부터 어르신 독감주사 긴 줄…발길 돌리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19일 18시 30분


“병원 문 열 때 맞춰 아침 9시에 왔는데 1시간 반 기다려 이제야 맞았어.”

19일 서울 중구의 한 의원에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고정애 씨(86·여)가 진료실을 나서며 말했다. 30평 남짓한 대기실에는 40명 정도의 노인들이 지친 듯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벤치형 좌석 3개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어르신들은 오랜 기다림에 지쳤는지 지팡이에 머리를 기대고 한숨 잠을 청하기도 했고, 처음 보는 옆 사람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이마저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이들도 많았다. 접수실 직원들은 “네, 오늘부터 70대 이상 접종하러 오시면 됩니다”며 연방 걸려오는 문의 전화에 답하느라 바빴다.

70세 이상 독감 백신 무료접종이 시작된 첫 날인 19일 전국 곳곳의 국가예방접종 민간위탁의료기관들에는 많은 노인들이 몰렸다. 이날 오전 11시 서울 성동구의 한 의원 대기실에서는 어르신들이 “난 2시간 기다렸다”, “난 3시간째 대기 중이다”며 옆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병원 입구에 들어선 한 노인은 빼곡하게 들어찬 대기자들을 보더니 “아휴, 오늘 못 주사 맞겠네” 하며 발길을 돌리기도 했다.

첫날부터 접종자가 몰려 일부 의원은 이미 오전에 당일 접종을 마감했다. 충남 부여시의 한 의원은 오전 9시 문을 열자마자 어르신들이 몰려 2시간 만인 11시에 하루 접종물량인 100명 접종을 마쳤다고 밝혔다. 정부 예방접종지침에 따르면 의사 1명은 하루 최대 100명까지 접종할 수 있다. 광주 광산구의 한 의원도 오전 8시 반 문을 연지 3시간 만에 100명 접종을 마감했다. 이날 오전 중 접종을 마감한 서울 동대문구 한 의원의 원장은 “오전 11시 넘어 100명 접종을 마쳤고, 이후에도 점심시간 전까지 20명 정도가 더 오셨는데 다 돌려보내야 했다”고 전했다.

이런 접종 몰림 현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독감의 동시유행(트윈데믹)을 우려한 시민들이 무료접종은 물론 유료접종을 받으러 꾸준히 병·의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질병청에 따르면 무료접종을 시작한 지난달 25일 이후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만 12세 이하 1회 접종 대상 어린이의 66.5%, 임신부의 32.2%다. 이달 13일 접종을 시작한 만 13~18세도 전체 대상의 44.1%가 접종을 완료했다. 부산 부산진구의 한 의원 간호사는 “올해 접종 문의도 많고 평상시보다 접종자도 늘어 보건소에 추가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문의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렇게 접종자가 몰리면서 무료접종 물량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올해 출하 계획량인 3004만 도스(dose·1회 접종분) 가운데 상온 노출, 백색입자 등으로 회수된 백신 106만 도스를 제외하면 총 유통량은 2898만 도스다. 지난 절기(2019~2020년) 유통량 2391만 도스(217만 도스 폐기)보다 507만 도스 많다. 하지만 이미 영유아, 어린이(만12세 이하)의 경우 물량 부족이 현실화 돼 13~18세 접종 물량의 최대 15%를 전환하기로 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저희가 조달물량 수급관리를 하지 못하다 보니 한계나 문제가 있는 상황이긴 하다”며 “(정부가) 자체 보유한 물량을 국가접종대상자들에게 우선 접종할 수 있도록 최대한 의료계와 협력해서 접종이 진행될 수 있도록 열심히 관리를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수현 인턴기자 고려대 사학과 4학년
전남혁 인턴기자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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